살면서 밑줄 긋기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소중함을 모르고 살 때가 많아요. 한 번쯤 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보세요. “수고했고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 몸도 칭찬하면 새 힘을 낼 겁니다.
우리는 세대를 구분할 때 종종 실수를 저지릅니다. 애나 어른이나
한 명 한 명이 다른 인생이고 그대로가 우주인데, 그렇게 보지 못하고
한 묶음으로 처리합니다.
젊은이들은 칠팔십 대 사람을 생물 연령만으로 따져 노인으로 규정하고,
사오십 대 사람은 싸잡아 아저씨로 병렬 처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6.25 70주년을 맞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그런 인식에 매몰돼 있던
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지요. 나라 위해 싸우다 숨진 영령 한 분 한 분이
다 광활한 우주인데, 전사자라는 한 묶음에 일렬횡대로 처리해온
내 생각이 미안합니다.
그러다 시 한편을 찾았지요. 시인 정현종의 ‘방문객’ 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는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마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선의는 인간의 의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선의로 대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 하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에요.
우스꽝스럽고, 누추하고, 바보 같은 사람일지라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분도 고결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외모는 다 달라도, 속사람은 다 같지요. 잘났든 못났든 사람에게는
나만의 영혼이 살고 있으니까요. 누가 나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고,
혐오스런 짓을 하더라도 “저 사람의 사는 방법이려니” 하고 넘길 일입니다.
주유천하 하는 김삿갓이 술 한 잔에 너털웃음을 짓고 다닐 수 있었던
데는 삶의 이치와 인간의 의무를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혐오를 앞세운다면, 그는 깨닫지도 못할 것이고 나는 더 큰 증오만
키우겠지요.
자기 자신은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바꾸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일하게 약발이 잘 듣는 한 가지가
있다면 사람을 인격체로 예우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일입니다.
쇼펜하우어도 만인에게 할 일은 ‘오직 선의로 대하라’는 것이었어요.
여기서 시 하나 더,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을 소개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대추 한 알에 우리 인생을 담은 시인의 눈이 아름다워요. 잘 생긴
대추나 못 생긴 대추나 똑같이 추운 밤을 견뎠습니다. 비바람과 천둥,
번개, 벼락을 맞으며 상처를 보듬었어요. 모두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아 결실한 것들입니다.
대추처럼 사람도 둥글둥글 살기까지, 제 혼자 노력으로 된 건 없습니다.
오스스 몸을 떨며 무서리를 맞고, 쨍쨍 내려쬐는 햇볕에 그을렸고요.
초승달이 둥근달이 되고 이지러지기를 또 얼마나 보며 기다렸을까.
아이 어른도 노인도 시련을 이기지 못하면 저렇게 붉고 둥근 대추 한
알을 맺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지 못하고 구박함은, 선의를
저버리는 것이고 꽃잎을 때리는 빗줄기의 심술에 다름 아니죠..
한 자리에서도 화려하게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뒤늦게 서리를 맞으며
꽃장을 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사람을 불의로 예단함은 죄악이라
했어요. 물을 주고 북을 주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 해도,,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오로지 하늘의 소관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따금 살아온 내가 기특하고 대견스러울 때가 있지요.
까칠한 상전을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이제는 내가 함부로 대해
탈이난 몸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소중함을 모르고 살 때가 많아요. 한 번쯤
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보세요. “수고했고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
몸도 칭찬하면 새 힘을 낼 겁니다. 선의를 아니까.
(이관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