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지켜온 민족정기
잘못된 역사를 인정한다는 것이 결국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훼손시켜 두고두고 후손들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민족정기를 지켜나가야 한다.
지난 27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쟁점을 정리하는 첫 변론준비기일이 열렸다. 우선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의 쟁점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행위 △계엄사령관에게 포고령을 발표하게 한 행위 △군대·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진입해 계엄해제 요구권을 포함한 국회 활동을 방해한 행위 △군대를 동원해 영장 없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압수수색한 행위 △정치인·법조인 등 주요 인사 체포지시 행위 5가지로 정리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다른 탄핵 사건보다도 위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런데도 국무위원들과 여당은 윤 대통령을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해서 모든 걸 다 바치고 있다. 이는 내란 외환(外患)죄의 공범이 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
우리 나라 5천년 역사란 3천 번이라는 외침과 960번이라는 전쟁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역사를 지켜 낸 민족정기라는 저력을 갖고 있다. 이런 민족정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국가의 장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에 혈안이 되어 국가를 문란 시키고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다.
우리나라 제헌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 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는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제에 저항한 3·1 운동의 헌법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규정하여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민특위는 열광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조사에 나서서 반민족행위자 7천여 명을 파악하고 1949년 1월부터 검거에 나섰다.
일본으로 밀항하려던 화신백화점 박흥식이 검거 1호로 체포되었고 “반민특위 활동은 공산당”이라며 반민법을 망민법(亡民法)이라고 자신이 만든 신문에서 떠들어 댄 악질 친일파 이종형, 민족대표 33인에서 1급 친일파로 변절한 최린, 문필로 친일 선두에 선 이광수와 최남선, 독립운동가들을 구속·고문하여 사망케 한 고등계 형사 출신인 김태석, 이성근, 유철 등이 속속 구속되었다. 그리고 특위 검찰에 체포된 반민자들은 서대문형무소와 마포형무소에 분산 수감 되었다.
1949년 6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서 경찰은 반민특위 직원 35명 전원을 강제로 연행, 수감 시켰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특위를 해체 시킨 일은 헌정질서를 어긴 반역사적인 조치로 기록되고 있다. 더욱이 고등계 간부이었던 노덕술이 경찰의 기술자이며 경험자이므로 그를 제거하고는 국가의 치안을 유지하기 어렵다면서 그를 앞세워 경찰조직을 개편시켰다.
결국 해방 후 우리나라 경찰조직을 일본 경찰 출신들이 장악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국민들은 일본계 출신 경찰관들로부터 갖은 폭력과 강압적인 수사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반민특위 해체라는 반 헌정질서를 어기고 일본 경찰관을 동원하여 국민들을 탄압하는 정책으로 독재정치를 자행한 결과 결국 4.19 혁명이라는 자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과 그리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3분 의열사들의 묘소가 있다. 이 3의사 묘소 옆에 1기의 가묘가 있으니 그 분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다.
이봉창 의사는 대한 애국단에 가입하여 상해에서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 암살계획을 세워 1932년 1월 8일 동경 사쿠라다 문에서 열병을 마치고 나오던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리고 윤봉길 의사는 1930년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거쳐 상해에 도착하여 김구 선생의 한인 애국단에 가입하여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일왕 생일)에 축하기념식에 참가한 일본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한 많은 요인들을 암살과 중상을 입혔다.
백정기 의사는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여 노동운동과 일본상품 배격운동에 참가하고 일본시설물 파괴 공작과 요인암살 친일파 숙청에 투신하여 항일운동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그는 1933년 홍구공원 육삼정연회에서 일본 주중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실패하였다.
이런 의열사보다 앞서서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초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이자 초대 한국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32살의 나이에 대한독립군의 장군격인 참모 중장으로 활동했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동양 평화를 해치는 주범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단죄하는 것은 동양 평화를 위하여 불가피한 선택이라는그의 동양 평화론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3.1 운동이라는 거국적인 민족독립운동을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 세계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한국민의 당당함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모친인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에 있는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감동 시킨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라는 것이었다.
이런 의연하게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기리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있어 그의 죽음을 더욱 값진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같이 5천년의 역사는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런 구국의 일념으로 민족정기를 지켜온 의열사들의 넋과 숨결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고 할 수 있다.
이런 5천년 역사를 지켜온 민족정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권력을 장악하여 독재정치를 하려는 세력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는 것은 잘못 된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정기를 지키려는 세력과 자신의 권력에 집착하는 세력들은 도척의 개가 되어 무조건 맹신하는 세력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당연히 민족정기를 받드는 세력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지만 도척의 개로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는 일을 단죄하지 않으면 또 다시 제2의 윤석열이 탄생하여 후손들의 삶을 훼손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린 도척의 개들은 단죄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도척이라는 큰 도둑이 있었다. 그에겐 9천명이나 되는 졸개들이 있어 도척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밥 주는 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맹종하는 개와 같은 얼뜨기들로 살아왔다. 그래서 이들을 도척의 개라고 부른다.
더러운 밥 찌거기 한 덩이를 얻어먹고자, 도척의 눈치를 보면서 꼬리를 흔들어 댄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사람답게 사는 길을 모르는 채, 도척의 개처럼 앞도 뒤도 가리지 맹종하면서 물어뜯으라면 물어뜯고 짖으라면 마구 짖어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거부했고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맹종하면서 약탈과 인권 유린도 불사하는 일을 손쉽게 저지른다.
역사는 그들을 도척의 개로 기록하고 길이길이 후손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서울 중앙지검장을 지낸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전 세계적으로 친위 쿠데타 성공률은 무려 93.3%이다"며 "윤석열 친위 쿠데타를 2시간 만에 막아낸 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12.3 내란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면서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국가 위기 사태임을 밝히고 있다.
내란 사태의 ‘우두머리’인 윤석열은 29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3차 출석 요구에도 불응하며 나오지 않았다. 이에 공수처는 더 이상 출석 요구 없이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즉각 체포하라는 들끓는 여론으로 30일 오전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2명 이외 179명이 사망한 무안 공항사태가 발생하였는데 대통령 비서실은 직접 나서서 사태 수습에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전남 무안공항을 찾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현장에서 “29일부터 1월4일 24시까지 7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무안공항 현장과 전남, 광주, 서울, 세종 등 17개 시도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여 희생자에 대한 조의와 애도를 표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들은 조기를 게양하고, 공직자는 애도 리본을 패용하며,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억대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건진법사’ 전성배(64)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것을 보면 아직도 윤석열 옹호세력들은 곳곳에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린 잘못된 역사를 인정한다는 것이 결국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훼손시켜 두고두고 후손들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민족정기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은 알고 있다.
- 계엄군의 뺨을 때린 어머니
- ”어머니 죄송해요, 용서하세요“라고 꾸뻑 고개를 숙이는 계엄군
- 청주 비행장 폭파내용을 폭로하고 눈물로 빨리 해제를 요구하는 블랙요원
그렇지만 도척의 개들은 막무가내로 윤석열의 내란 외환죄를 무죄를 외치면서 이를 옹호하고 있어 국가의 전통과 민족정기를 뒤짚으려고 획책하고 있으니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허지만 이 땅에 우리 후손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터전인 보편적인 질서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국가를 지키는 일이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귀중하게 여기면서 민족정기를 지켜 왔던 역사를 안고 있고 그들의 넋과 숨결을 느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윤석열 친위 쿠테타는 진통을 겪지만 곧 극복하리라고 믿는다.
그래 ‘오, 대한민국은 영원 하리라’는 믿음으로 도척의 개들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선조들의 넋과 숨결을 되찾아 민족정기를 이어받아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