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에 명문학교
모교사랑은 동서가 따로 없습니다. 고향 사랑만큼이나 평생을 두고 사람에게 작용하는 것이 모교사랑인 듯합니다. 몸이 늙어 고향을 찾거나 모교를 찾아 옛 추억을 더듬어보고자
명당(明堂)은 있나 봅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는 재벌 창업주 여럿을
배출한 명문 지수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등 창업주 3인을 배출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여기에 LG의 구자경, 구태회 GS의 허준구, 허신구 등 ‘거물’ 경제인
20여명이 이 교정에서 꿈을 키운 동문들입니다. 조선의 유명한 지리책인
택리지는 이름난 산맥이 끊어진 곳에 인물이 난다했는데, 이를 뒷받침
하듯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끝자락이 모이는 곳에 이 학교가 있지요.
꽤 지난 일입니다. LG 구자경 명예회장과 함께 그의 향리인 지수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이곳도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마을의 세는 시들고
활력은 사위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곳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뺏긴 곳은 모교인 지수초등학교입니다.
교장이 우울한 소식을 전합니다. 학생수가 적은 농어촌 지역 학교에 대한
통폐합 계획이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고 하네요.
학생수가 47명에 불과해 방치할 경우 수에 밀려 유서 깊은 학교가 3km밖
분교로 합쳐질 운명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인구유출로 본교 학생 수는
줄어들고 신흥마을에 세운 분교는 인구유입으로 학생이 늘어 규모의 반전이
일어난 셈이죠.
한때 300명에 이르던 학생이 미니학교로 전락한 명문의 지수초등학교.
마을과 학교가 나서서 연판장을 돌리며 구교운동을 펴보지만 역부족이라고
하소연합니다. 단순히 학생 수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100년에 가까운 유서
깊은 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리다니, 말하고 듣는 사람 모두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지킬 대책이 있습니까?"
"식당 체육관과 같은 시설을 갖추면 학생 유치에 도움이 될 텐데 워낙 큰돈
이라." 두 분의 대화를 듣자니 옛 영화가 허사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대화를 마치고 교정 한 복판에 서 있는 반송 앞으로 갑니다.
LG 구인회 등 1회 졸업생이 졸업 기념으로 심은 소나무입니다.
학교 역사를 오롯이 지켜본 반송은 사철 푸르게 우뚝 서있습니다. 한국을
빛낸 쟁쟁한 기업가들이 꿈나무로 심은 반송 앞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낍니다.
반송은 보은의 정이품송처럼 귀하신 몸이죠. 나무도 늙으니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기나봅니다. 수시로 링거를 맞고 땅을 보하여 기가 쇠하지 않게
돌보는 것이 교장선생님의 책무처럼 들립니다. 지난 태풍에 찢긴 가지를
어루만지며 노 회장은 관리를 당부하고 또 당부합니다.
이로부터 모교 살리기 운동이 추진됩니다. 구자경 동문이 사재를 출연하여
300평 규모의 복지시설(실내체육관?급식소) 건립에 나섭니다. 시골학교에
유례가 없는 학생 복리시설을 세우고 총동창회에서는 장학금 지원 사업을
전개하는 등 구교운동이 전개됩니다. 여러 지원사업을 통해 학생의 이탈을
막고 유입을 도모하자는 것이지요.
폐교위기를 맞은 ‘회장님’들의 모교사랑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이를 도우려는
지역 기관들의 관심도 따라 높아집니다. 그 결과 줄어들던 학생 수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지수초등학교는 마침내 폐교 위기에서 벗어나 역사와
전통의 학교 명패를 지킬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 또 불씨가 살아날지 더 두고 볼 일입니다.
모교사랑은 동서가 따로 없습니다. 고향 사랑만큼이나 평생을 두고 사람에게
작용하는 것이 모교사랑인 듯합니다. 몸이 늙어 고향을 찾거나 모교를 찾아
옛 추억을 더듬어보고자 하는 것은 유한한 인생이 갈증을 느끼는
인지상정일 테니까.
글 이관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