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3(금)
 

아버지 기일을 찾아 대전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창밖의 잿빛 세상을 보면서 저무는 해와 가당찮은 내 나이와, 헐렁해진 시간의 밀도 속을 헤집는 바람소릴 듣다가 뜬금없는 의문 하나를 건집니다.

 

그날 아버지가 만족하셨을까? 희수(77)연이 열린 1992년 봄날, 아내를 앞서 보낸 아버지는 혼자 상을 받으셨지요. 자식들은 아버지께 기쁨이 되고자 많은 친구 분을 초대해 정성껏 모셨습니다. 모두 기꺼워하셨고 당신도 흡족하셨는지 직접 자손 소개도 하셨지요.

 

그런데 27년이 지난 지금 왜 그 생각이든 걸까? 물론 그때도 어머니가 그리웠었지만 아버지 심중에 이는 댓바람 소리는 듣지 못했으니까요.

부부해로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옆에서 배우자 잃는 모습들을 보면서 외짝이 얼마나 큰 행불복의 요소 인지를...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말의 참뜻이 심금에 와 닿습니다. 요즘 세태에서 파뿌리는 고전이 된 듯합니다. 그만큼 부부개념도 달라졌으니까요.

 

요즘은 생일이 대세입니다. “애가 무신 생일이노그런 소리 듣던 게 엊그젠데. 지금은 돌만 지나도 깨치는 게 생일인 듯합니다. 애들 생일이 더 요란하지요. ‘생파라고 친구 초청하고, 선물 싸들고 오는 또래들을 보면 생일 문화만은 흥왕한 나라가 됐습니다.

 

올해도 새 달력을 걸기 전에 아무개 생일부터 기록합니다. 누구로부터 축하를 받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외로운 인생끼리 날을 정해 오늘은 당신 날이야, 네가 세상의 주인공야하고 반겨주니, 때론 축복송이 눈물겹기도 하겠지요.

 

아버지 기일에 새롭게 눈뜬 결혼기념일’. 최근 모임에서 후배가 결혼30주년 일이라며 양해를 구합니다. 그 말에 덥석 손을 잡고는 , 부인이 훌륭하시네. 30년을 데리고 살아주셨군.” 진반농반의 축하지만 말에 진심을 담았습니다.

앞으로 결혼 30? 40? 쉽지만 않아 보입니다. 예전엔 빠른 결혼에, 이혼은 어불성설이라 은혼식, 금혼식은 보통이고, 60주년 회혼식을 여는 어른도 많아 동네잔치가 됐었지요. 이제는 전설 따라 3천리에나 나올 법한 얘기입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결혼하고도 이혼은 그리도 쉽게 잘 하는지, 경력될 일도 아닌데 어른들마저 황혼에, 연금이혼까지 사전에도 없는 말이 나돕니다. 이혼에 대해서는 자식에조차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금기영역이 돼버렸습니다.

 

 

이런 세태에 정말 축하 받을 사람은 하나씩 나이테를 늘려가는 부부입니다. 거친 세파에도 꿋꿋이 부부의 자리를 지키는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빠가 있을 때, 가정은 보금자리로 탄생합니다. 나 홀로 팔순, 구순잔치가 무슨 큰 기쁨일까. 그보다 살아서 부부가 맞는 결혼 30주년이 소중하고, 40주년이면 하늘이 내린 복으로 반길 만한 일입니다.

 

개인잔치보다 해로잔치가 더 성대했으면 합니다. 연말에 큰 기업의 창업주와 만난 자리에서 말했지요. 생일도 좋지만 회사가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문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석혼식(10), 은혼식(25), 진주혼식(30) , 어렵게 결혼하고 쉽게 도장 찍는 시류에, 가정의 연륜을 소중히 가꾸는 아름다운 보금자리인증하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

(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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