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찾아 오르는 고개
세상이 바뀌니, 힘들게 넘던 고개들 기억은 호롱불같이 가물대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고개까지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사람들 마음에는 오늘도 여전히 그리움으로 찾아 오르는 고개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고개도 많고 얽힌 사연도 많습니다. 이별이 되고, 한이
되고, 통곡이었던 고개들. 지금은 터널이 뚫리고 찻길이 열려 전설이 되었지요.
그러나 진짜 고개보다 더 힘들었던 고개는 따로 있습니다. 요즘 TV에서 가장
핫한 ‘미스터 트롯’을 보다가 서럽게 넘던 마음의 고개들을 찾아냅니다.
열세 살, 동원이가 불러 마스터의 올 하트에 눈물샘까지 자극했던 ‘보릿고개’.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진다"로 시작되는 '보릿고개'는 마음 시린 옛 시절을
호출합니다. 곡식이 떨어진 봄부터 보리수확 때까지 주린 배를 초근목피로
달래고, 그마저 없으면 물 한 바가지로 배 채우던 시절. 오죽했으면 한참 뛰놀
아이에게 뛰놀지 못하게 막았을까.
가수 진성은 "동원이만 할 때부터 노래하며 배고픈 설움을 겪었는데 나도 몰래
옛 생각에 눈물을 보였다”고 말합니다. 그 때를 모르는 세대들은 배곯는 것이
무언지 모르죠. 문경새재보다 더 힘들게 숨이 차 넘던 보릿고개는 ‘단장의
미아리고개’와는 또 다른 한의 고개였습니다.
‘바위고개’도 마음 아픈 고개입니다. 부드러운 멜로디와 정감어린 가사로 한때
최고의 인기곡이었지만, 소절마다 님의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납니다. 이 노래
악보에는 작사자가 안 보여 미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월북 연극인 이서향이 쓴
시입니다. 결혼 5년 만에 남편 월북으로 청상이 된 부인(백병원家 딸)이 죽기
전에 한 맺힌 사연을 풀어놓았지요.
바위고개는 남편이 중2때 지은 시를 친구(작곡가 이흥렬)가 받아 작곡했다고
합니다. 일제하의 설움을 고개로 표현해 민족의 심금을 울린 애창곡이 됐으나,
월북자를 작사자로 밝히기는 어려웠나 봅니다. 그러나 세월이 훌쩍 흐른 뒤,
바위고개는 아내의 운명을 예견한 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 속 고개를 넘었을 아내라는 여자. 실존하지
않는다는 바위고개는 이승을 떠나면서 안고 갔을 아내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예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임이 즐겨즐겨
꺾어주던 꽃,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고모령’ 도 슬픈 고개였지요. 노래 ‘비 나리는 고모령’으로 잘 알려진 고개의
주인공입니다. 대구에 있었다는 고모령은 영원한 사모곡의 상징입니다. 징병을
떠나는 젊은이를 가득 태운 열차가 고모령을 힘들게 오를 때마다 가슴 시린
사연이 쌓였지요.
당시 기관차 성능으로는 경사 높은 고모령을 단 번에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열차가 헐떡이며 고개를 오를 때, 사방에서 몰려온 어머니들로 아우성입니다.
아들과 눈 한번 더 맞추려고 부르짖던, 이별의 아픔이 서린 고개. 현인은 이를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노래했습니다.
‘스무고개’는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입니다. 질문은 스무 번까지 가능합니다.
“남자야?” “응” “키가 커?” “아니” 이렇게 질문으로 힌트를 얻으면서 답을 찾는,
지금은 그리움의 고개가 됐지요. 스무고개 원리는 요즘 심리치료에 쓰인답니다.
아이들의 ‘왜요?’ 란 질문이 그런 것들이죠. “공룡이 다 어디 갔어요?” “죽었지”
“왜 죽어요?” “화석이 지구랑 꽝하고 부딪쳐서.” “화석이 왜 꽝 해요?” 이렇게
‘왜요’가 거듭되다보면 천체 물리학 원리에도 접근이 가능하답니다.
세상이 바뀌니, 힘들게 넘던 고개들 기억은 호롱불같이 가물대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고개까지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사람들 마음에는 오늘도 여전히 그리움
으로 찾아 오르는 고개들을 다 품고 사니까요.
(소설가 이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