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서운 상전이 된 몸
사람이 그렇습니다. 스스로 생각과 태도를 잘 가꾸면 녹이 내리지 않고, 나이테만큼 깊게 내린 뿌리에는 쉽게 서리가 닿지 못하니까요.
어디선가 보았던 글입니다.
“젊었을 때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 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젊어서야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준 몸인데, 지금은 몸이 내 생명줄을
바싹 쥐고 있습니다. 몸이 상전이 된 데는 세월 탓이 여덟이고,
나머지는 몸을 마구 굴린 내 잘못입니다.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2.6세로 일본에 불과 1.5년 차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건강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10명당 3명꼴에 불과합니다. 그 대신
외래진료건수는 세계 최고지요. 우리처럼 종합건강검진이 번창한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덕분에 병을 조기에 발견도 하지만 건강에 대한 걱정을 과잉생산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수년 전 파이낸셜 타임스가 한국인의 장수비결을
‘김치와 건강 염려’라고 빗대고는 마음 편히 사는 것보다 좋은 건강비결이
있겠느냐고 되묻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의학정보의 홍수 속에 삽니다. 웬만큼 나이가 든 사람은
만나면 건강문제가 대화의 중심이 되는 현실입니다. 하버드의대 연구팀이
60년에 걸쳐 3백명을 대상으로 ‘잘 늙기’를 추적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노화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와 원만한 인간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 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눈이 어둡고 몸이 굳어 발톱
깎는 일조차 전쟁이라며 씁쓸해 하지만, 생로병사를 순리로 받아들임이
첫 번째 건강의 비결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먼저 늙고, 사람은 다리부터 쇠한다’ 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대뇌에서 다리로 보내는 명령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고, 속도도 떨어집니다.
진시황 이후 청나라 마지막 황제까지 335명 황제의 평균수명이 41세이고,
조선시대 27명 왕의 평균은 37세에 그칩니다. 그래서 예부터 장수의
조건으로 보약이나 산해진미보다 튼튼한 다리를 꼽았지요.
다리는 기계의 엔진 같아 망가지면 올 스톱입니다.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피부가 주글주글해짐을 걱정할 게 아니라, 다리 근육부터 신경 쓰랍니다.
몸에서 가장 큰 관절과 뼈는 다리에 다 모여 있어요. 젊은이의 대퇴골은
승용차 한 대 무게를 견뎌내고 슬개골은 몸무게의 9배를 지탱합니다.
대퇴부와 종아리 근육은 땅의 인력과 맞서느라 늘 긴장상태에 있고요.
견실한 골격과 강인한 근육, 부드럽고 매끄러운 관절은 인체의 철의
삼각을 만들어 하중을 지탱합니다. 미국에서 발행하는 ‘prevention(예방)’
지가 장수의 특징으로 다리근육의 힘을 꼽는 이유입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일생이 담겨 있습니다. 화장을 해도 숨은 얼굴에서
나오는 잔상은 가릴 수 없지요. 젊어 사랑했던 여인을 만나고 온 친구가
만나지 않음만 못하다고 쓸쓸해 합니다. 고이 간직해온 환상이 무너져
아쉽다면서.
나이가 들어도 여자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모습이 보여야 아름답고,
남자는 경륜과 인품이 풍겨나야 잘 늙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는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삶을 살았느냐, 살아갈 것이냐 와도 통합니다. 철따라
옷을 갈아입듯, 노화에 순응하고 원만한 인간관계와 다리 근육까지 잃지
않으면 상전이 된 몸과 더없이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겠지요.
금이라서 다 반짝이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스스로 생각과 태도를 잘 가꾸면 녹이 내리지 않고,
나이테만큼 깊게 내린 뿌리에는 쉽게 서리가 닿지 못하니까요.
글 이관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