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우리들의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징검다리 위에서 만난 염소 이야기를 내용으로 이솝우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 사람만 겨우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 위해서 서로 반대 방향에서 염소 두마리가 만났다.

이 징검다리 위에서 내가 먼저 가겠다고 싸운다면 결국에는 두마리 염소는 모두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두마리 염소가 비좁은 징검다리 위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70대가 된 오늘날에도 이 이솝우화에 대한 숙제를 안고 거의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두 마리의 염소가 모두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우선 징검다리 위에서 두 마리의 염소가 서로 살아나야 겠다는 위기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서 이를 죽음을 무릅쓰고 생존전략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결국 그것은 한 마리의 염소는 엎드리고 다른 한 마리의 염소는 이를 뛰어넘어서는 모험적인 시도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모험적인 선택을 해야만 죽음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힘은 지식을 넘어서는 지혜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식이란 상황을 파악하고 정리하는데는 크게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비좁은 징검다리 위해서 만난 두마리 염소에겐 이보다 더 절박한 위험은 없기때문에 구태여 지식정보가 요구는 상황 분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모험적인 도전만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래서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는 지혜는 세계 인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모험적 결단을 만들어 내고 이를 실행에 옮겨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문제에 해답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서양 사람들은 대체로 기독교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한 말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부담해야 되는 철저하게 주고받는 방식의 거래방식에 의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우선 아니오라는 말에 익숙해 있고 항상 라는 질문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협상에서 기본적으로 아니오이지만 몇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좋다는 아니오, 그렇지만이 생활화 되었다.

이에 반해 동양 사람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살려준다는 의미에서 우선 를 해야 하고 그 다음에 조건을 붙이는 , 그렇지만에 익숙해 있다. 따라서 동양 사람들은 각론보다는 총론에 주력하고 총론만 합의되면 각론은 그냥 넘어가는 일방통행식 생활방식에 익숙해 있다.

이런 일방통행식 사고방식으로는 합리성을 모색한다든지 효율성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을 겪기 일쑤이다. 따라서 우리의 사고방식이 전환되지 않으면 토론문화는 정착될 수 없다고 한다.

 

토론이란 토의나 의논과는 다른 것이다.

토론이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결론을 찾아내기 위해서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떤 흥정이나 정실이 개입될 여지가 없으며 다만 사실과 논리만 있을 뿐이다. 이는 또한 객관적인 눈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습성을 가지고 훈련된 저널리스트 적인 기질이 있어야 하고 사실 인식, 가치판단, 정책의 방향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전문적인 토론가 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토론문화가 정착되어야 하고 그의 일원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에 대비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토론의 기본은 , 그렇지만이 아니고 아니오, 그렇지만이라는 사고가 몸에 배어야 총론 찬성, 각론 반대라는 각론 우위시대를 구가시켜 나가는 토론문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동양 사람들과 같이 이심전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검토하고 토론하여 합리적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도록 토론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젠 침묵 적인 굴종이 미덕이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상론 적인 연설보다 현장 중심의 현실 론이 대우받는 토론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은근쓸쩍이라는 문화에 젖어 말이 많은 것은 멸시하고 참지 못하는 다혈질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듣고 점잖다는 평을 듣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성취시켜 나가는 토론시대에 살고있는 것이다.

 

매를 맞고 참지 못해서 억지로 반격하는 허약한 태도에서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다. 공격이 최대의 방어이고 기선을 제압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토론의 기본을 배워 학습을 통한 생활화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논리의 전개 방식도 서양에서는 결론이 먼저 나오는 연역법에 익숙하지만 동양인의 결론은 맨 나중에 나오는 귀납법에 익숙해서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낼 수 없다.

 

당진시는 탄소중립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만일 탄소중립에 실패한다면 당진산업단지에 있는 화력발전단지. 철강단지에 있는 모든 기업들은 그 피해를 입게 되고 그로 인하여 당진경제는 장기간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탄소중립이 성공적으로 완성된다면 당진산단에 있는 화력발전이나 철강업체들은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지속적인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절박한 과제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얄팍한 지식을 내세워 찬성과 반대만을 고집하는 일은 결토 바람직하지 않다.

 

당진시에서 탄소중립화 사업은 필연적으로 완성시켜 나가야 현안과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모험적인 선택이라도 과감하게 이를 선택할 수 있는 공격적인 자세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당진경제는 지속적으로 생존해 나갈 수 있다.

탄소중립은 지금까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이런 길 위에서 세계 각국들이 동일하게 출발하고 있으니 누가 먼저 훌륭하게 탄소중립을 완성해 나갈 수 있느냐가 결국 미래 경제의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고 그 지역경제를 되살려 나갈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는 일이다.

탄소중립은 당진시에겐 두마리 염소가 징검다리위에서 만난 것과 같은 위기이다. 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고 그 지혜는 과감한 모험적인 선택일지라도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수용해 낼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태그
첨부파일 다운로드
해나루.jpg (29.6K)
다운로드

전체댓글 0

  • 91683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탄소중립이라는 위기를 관리하는 지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