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해 청정지역으로 피접하는 사람들이 는다고 해요. 바이러스가 또 다른 빈부 차를 드러냅니다. 부자들은 옛날 왕들이 역병을 피해 피접하듯, 오염된 도시를 떠나 청정한 시골(별장)로 몸을 숨깁니다.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거나 무인도를 통째로 빌리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피가 안전할까? 그곳에도 도우미는 들락거릴 테고, 아프면 병원을 찾아야 할 텐데... 이 세상 어디에 안전한 곳이 있을까. 지금의 나 홀로 상황이 길어지면서 젊은 날에 본 데카메론(Decameron)’을 다시 읽게 합니다.

 

중세와 현세, 페스트와 코로나라는 대칭구조 속에 한쪽은 유럽인구의 1/3을 죽이고, 다른 한쪽은 지금까지 3천만 명에 가까운 감염자, 80만 명을 사망시킨 공포의 괴질입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허둥대는 모습도 많이 닮았어요 .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종창이 생기고 검은 반점이 나타났다. 사흘이 지나면 극도의 고열로 환각상태에 빠지더니, 닷새가 되면 감염자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이렇게 매일 수많은 사망자가 생겨 시내는 아비규환의 상태였다.

 

돈이 있는 자는 술을 퍼마시며 공포를 잊으려 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두문불출, 사람과 접촉을 피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일곱 명의 숙녀와 세 명의 청년이 인적이 드문 교외의 별장에서 사람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기로 했다.?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이야기예요. ‘페스트는 14세기 유럽을 초토화시킨 재앙입니다. 2500만명이 원인도 모른 채 검게 변한 몸으로 죽어갔지만, 18세기까지 병명조차 내놓지 못했어요. 감염되면 각혈과 종기가 나고 검은 농포가 온몸에 생겨 며칠안가 죽음을 안기는 괴질...

 

폐스트가 창궐하자 유럽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요. 마스크착용, 손씻기 등 기본수칙도 없고, 진단방법이 없으니 증상만으로 감염 사실을 판단합니다.최선책은 감염자를 격리하고 그들에게서 멀리 떠나는 것뿐이었지요.

 

부자들은 잽싸게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지만, 서민층은 병든 부모와 자식을 서로 버려야 합니다. 밖에는 가축들이 떠돌다 죽고, 집안에선 병든 자가 쓸쓸히 죽음을 맞지만 사체를 치워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요.

 

사람이 사람을 접근하는 것 자체가 공포 그 자체이니까. 무지는 더 큰 화를 키웁니다. 감염경위를 모르고 고양이, 개 등의 사체를 거리에 방치한 것이 쥐의 급속한 번식을 부른 겁니다.

이것이 치명적 결과를 낳습니다.

 

페스트는 계급관계도 심화시켰어요. 피신한 부자들은 질병이 끝나면 가난한 여자를 먼저 보내 안전성을 확인한 후 집에 갑니다. “병은 가난한 사람을 공격하고 부자들을 면제해 준다.” 샤르트르의 가시돋은 날 선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부자들은 피신처에서 발병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또 다른 지역에 마련해 둔 저택으로 쉽게 떠나곤 했어요.

 

데카메론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때, 피렌체의 한 별장으로 피신한 부잣집 선남선녀의 대화를 모은 형식입니다. 부자들은 시골 사람들과 맺은 임대 계약서에 전염병이 돌면 방 하나를 빌려주며, 내 말들을 마구간에 들여 놓는다는 조항도 두었어요. 유사시 피신장치인 셈이죠.

 

런던에서는 궁정이 옥스퍼드로 떠나자 지체 높은 사람들이 줄줄이 빠져나가 단 한 건의 재판도 열지 못합니다. 폐쇄된 도시엔 가난한 사람뿐이고, 파수꾼들만 활개 치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어요. 제노바에서는 쌓이는 시체를 감당하지 못해 바다로 실고 나가 통째로 태워버립니다.

 

14세기의 페스트, 21세기의 코로나. 두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중국을 수상쩍게 바라봐요. 페스트의 확산이 교역확장과 경제의 유동이 커지며 빠른 전파를 불렀다면, 코로나는 글로벌 시대가 세계의 역병을 부른 셈입니다. 역사는 이래서 반복한다는 것일까.

 

코로나로 빈부차를 드러낸다면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한쪽만 방역을 했다고 끝나지 않아요. 방역을 잘했다던 싱가포르가 외국인 노동자를 제때 건수 못해 불똥이 튄 것처럼, 결국은 모두가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때라야 정상적인 일상이 돌아옵니다.

 

코로나19는 이웃과의 공생에 답이 있습니다. 이웃 감염이 내 감염이고 내 감염이 곧 이웃 감염이라는. 코로나가 문명의 미래를 어디까지 호령할지 조심스러운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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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을 다시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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