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이제 끝이 가까워져서

삶의 마지막 막이 내려가려 하네

친구여, 확실히 말해둘 게 있다네

잘 알고 있는 나의 이야기 말일세

난 충만한 인생을 살았고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가보았다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방식대로 했다는 걸세

후회도 몇 번 있었지

그러나 입 밖에 낼만큼은 아니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빠짐없이 모두 해내었지

나는 인생을 계획했고

그 길을 한 걸음씩 걸어왔다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방식대로 했다는 걸세....

 

설날 아침 KBS-FM에서 흘러나오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웨이를 들으며 떡국을 먹었다. 그의 독특하고 미묘한 감성적 배음(倍音)이 섞인 목소리가 유난히 가슴에 눌어붙었다. 살아온 많은 날들이 마이웨이를 합창하지만 배음이 강렬해질수록 나의 삶에 벌어지는 간극을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드는 나이와 무관하지 않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공명 같은 것.

 

‘MY WAY’내 방식(마음)대로라는 뜻. 미국 스탠더드 팝 음악의 아이콘 프랭크 시나트라가 쉰네 살에 발표, 전 세계인이 애창하는 명작 반열에 오른 곡이다. 다사다난했던 인생의 긴 여정 끝자락에 선 남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노래의 첫 운을 뗀다. 장엄한 저녁노을처럼 아직도 노년의 찬가로 불리는 마이 웨이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주제어는 나 만의 길’ ‘나만의 방식이다. 나의 방식대로 충만한 인생을 살면서 후회도 있었지만 할 일은 다했다는, 살아온 날들을 자긍 하는 노랫말이 긴 서사처럼 들렸다.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네 번의 이혼과 결혼으로, 예능 엔터테이너로, 명성을 쌓았던 그에게도 후회라는 질곡이 있었다. 영화 제작에 실패하고 삭풍한설을 맞으며 은퇴를 준비할 때, 그를 존경해 온 가수 폴 앵카가 이를 만류하려고 만들어 헌정한 곡이 마이 웨이. 원곡은 시들어가는 사랑을 노래한 프랑스 샹송이지만, 폴 앵카가 원곡 사용권을 받아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시켰다.

 

그가 가사를 만들던 이른 새벽, 뉴욕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에 젖는 뉴욕의 새벽에서 영감을 얻은 폴 앵카는 이럴 때 시나트라라면 어떤 말을 할까? 그가 즐겨 사용한 말들을 떠올리며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입혀 하룻만에 노래를 완성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선 한 남자의 당당하면서도 쓸쓸한 애상이 전곡에서 묻어난다. 16세에 대표곡 다이애나를 작사 작곡해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칠만큼 음악적 재능이 걸출했던 폴 앵카는 시나트라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곡을 만들었다고 알렸다.

 

이러한 인연 속에 발표된 마이 웨이1200곡이 넘는 방대한 취입곡 중 시나트라의 인생작이자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그에게 가수로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주었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이 노래를 지극히 싫어했다고 그의 딸이자 가수인 낸시가 전했다. ‘마이 웨이가 자기애에 심취해 독선적으로 살았던 자신의 삶과는 괴리를 느끼게 해서 일까. 그럼에도, 무대에 설 때마다 열광하는 청중을 위해 이 노래를 열창해야 했다.

 

세상에 원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일까 이 노래를 흥얼대면서 때로는 가사를 비틀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니야, 난 그렇게 살지 못했어.” “맞아, 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괴리와 간극이 역으로 공감대를 들쑤시는 그 무엇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고 생각에 닿을 수도 있겠다.

 

난 충만한 인생을 살지 못했고 /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다 가보지 못했네 /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 내 방식대로 살지 못했다는 걸세 / 몇 번의 성공도 있었지 / 그러나 입 밖으로 낼 만한 건 아니었어 /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하지만 / 빠뜨린 것도 많았다네 / 나는 인생을 계획했고/ 그 길을 한 걸음씩 걸어왔지만 /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 내 방식대로 못했다는 걸세....

 

어떤 인생이든 명암과 애증이 왜 없겠는가. 꽃도 검은 그늘이 있거늘 한평생을 후회 없이, 비굴하지 않게, 나답게 잘 살았다고 장담하기가 쉽지 않은 인생이다. 가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 하지 못함에 대한 후회,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남는 건 인간만이 지닌 고유 정서다.

 

원하지 않은 길을 가면서 때로는 절망했고, 신실하지 못했고, 미덥지 못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회한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이 노래에 젖는다. 시나트라 묘비명에 쓰인 그의 노래 제목처럼 ‘the best is yet to come (아냐,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어)’.

-소설가 /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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