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전 세계 여행자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 매년 2천만 명이 찾는

바로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가우디성당)’ 앞에 서면

그 웅장함, 화려함에 놀라지만 지금도 짓고 있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져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설계로 1882년 착공해

가우디사망 백주년

맞추어 2027년 완공 예정이랍니다. 바티칸이 모든 성당은

베드로성당보다

낮게 짓도록 했지만 가우디성당의 예술성을 인정해 예외로 했다는군요.

 

수많은 첨탑 중에는 예수의 사도를 상징한 높이 100m 12개와 예수를

상징하는 높이 172m의 중앙 탑이 있어,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이 될 전망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지 마세요. 우리도 100년 짓는 건축물이 있으니까요.

한국 천주교 발상지 성역화 사업으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 세워지는 천진암 성지가 벌써 착공 40년을 바라봅니다.

 

1995724일 일기에는 18만평 대지에 지하1층 지상2층 연 만평짜리

천진암 성지사업이 적혀 있어요. 1983년 착수해 설계와 터닦기로 30,

골조공사 20, 내부공사 50, 해서 ‘100년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본성당 대지 전경

초대 추진위원장 변기영 신부는

유럽의 로테르담성당, 성 베드로성당을 예로 우리는 너무

당대주의에 사로잡혀 매사를 단시일에 해내려고 무리한다

무모한 집착을 꼬집었어요. 내 임기에, 내 생전에, 완공하려다가 졸속으로

끝난 일이 적지 않으니까요.

 

독립기념관은 5년 만에 완공하고, 예술의 전당은 3년 만에 뚝딱 짓는 그런

졸속공사는 이제 시정돼야 겠지요. “건물을 짓는 데는 건축기술 외에

반드시 세월이란 원료가

가미돼야 한다는 변 신부의 말은 울림 그대로입니다.

 

이후 건립위원회 총재를 맡은 김남수 신부도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바뀌어도 사업은 계속 되는 풍토, 세대는 바뀌어도 역사는 전승되는 문화가

아쉽다는 안타까움은 우리사회가 성찰해야 대목입니다.

 

한국기독교사에는 많은 순교의 피가 흐릅니다. 서울 마포 한강변의 절두산

성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 가면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묻혀있는지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에 역설적으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로 답을 찾은 분들입니다.

 

한국 가톨릭이 자부심을 갖는 데는 외국 선교사에 의한 복음 전파가 아닌,

가톨릭사에 유래가 없는 자생적 발상이라는 점이지요. 천주교회의 100

성역사업 현장 안내판에 이러한 자부와 긍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파견과 복음 전파 없이 순수한 학문 탐구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강학회를 신앙으로 발전시켜 한국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은 자랑스러운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다.”

 

우리나라 공식적인 천주교의 시작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온

1784년이나, 이보다 7년 전 권철신이 이끄는 학자들이 천진암과 주어사를

오가며 강학모임을 열어 조선 천주교의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켰어요.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이승훈 등 5인이 창립 선조입니다.

 

규모는 성지안내도가 짐작케 해줘요. 광암성당, 대성당건립터,

천진암강학터, 200주년기념비,

한국천주교창립 성현5위 묘역, 조선교구설립자묘역, 성모경당,

세계평화의 성모상, 박물관 등 순례에만 두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핵심인 천진암 대성당은 1987년 터 닦기공사를 시작으로 1992년 대성당

터를 축성해 2079년 완공할 계획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천국열쇠를 든

베드로 동상과 마주칩니다. 석양을 받아 신비감을 더하네요.

 

천진암 성지는 세 번째 방문입니다.

1996, 2007, 2020, 하지만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아직도 세월이란 원료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세월의 흐름이 멈추어 선 곳,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종이 울리면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이 떠오릅니다.

 

100세를 살아도 준공된 모습은 볼 수 없으니, 이번에도 조감도로 완공 후의

현장을 상상하며 돌아갑니다.

옛날에, 자신이 묻힐 곳을 미리 보고

뒤돌아서시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떠오르네요. 유한한 인생을 생각했나 봅니다.

(이관순 소설가/daum cafe/ leeletter) 13.2

 

몽골평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낙타떼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내 지인은 몽골의 별밤을 회상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향수에 젖습니다.

"난 혼자서 몽골 어디든 찾아다닐 수 있다. 몽골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진정으로 몽골을 알려면 초원이 부르는 바람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는 유하의 시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를 이렇게 변주했어요.

 

?나 어느 날 내가 사는 초원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어느 날 나의 초원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승마여행 중에 만난 초원의 무지개와 신비의 구름과 바람들. 광야에 핀 꽃들.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노을, 이 모두가 소리 내어 나를 찾는 곳.

그곳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다는 그 소망이 찬란한 슬픔의 봄 같았어요.

 

줄이고 또 줄여본다. 견디고 또 견뎌본다. 그러나 답은 없다. 접어야 할지

말지. 이 현실이 어지럽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이동이 곧 우리의 미래인데. 어느 날 그 이동이 막혀버렸다. 하늘길, 땅길,

물길도 모두. 텅 빈 인천국제공항에서 인간의 역사가 멈춤을 보았다.”

 

오늘은 17년간 몽골 초원을 함께 달린 낡은 모자 사진도 올렸습니다. 그의

글을 보다 징기스칸을 읽으며 밑줄을 쳤던 글이 떠오르네요. “빵을 먹는 자

길을 내고, 밥을 먹는 자 마을을 만든다.” 이 말에서 이동하지 못하는 자의

아픔을 느낍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계속 걷는 것은 희망이 보여서가 아닙니다. 계속 걸어야

희망이 보여서 입니다. 인내는 소극적으로 참는 것이나, 적극적으로는 이기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leeletter)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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