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8(월)
 

사람 마음에 베인 상처처럼 아프고 오래가는 것도 없다. 어느 날 믿고 아꼈던 사람이 배반을 하고 떠났을 때,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마음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일보다 힘든 일은 없다. 힘으로 나라를 정복했다고 다가 아닌 것이, 땅은 점령해도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지 못하면 언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그 많은 전쟁들, 인종 간의 분쟁, 권력을 에워싸고 벌이는 암투, 이해관계로 발생하는 갈등이 다 그래서 생겨났다. 배반, 배신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는 세상 일들이 다 사람의 문제로 시작되었다. 출신, 인종, 문화가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기업을 운영하는 일 또한 핵심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로 귀결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긴 것도 같은 이치라 하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대치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내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데... 이런저런 일을 들먹이며 자신을 높이고 은근히 유세를 부린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때만큼 허망한 때도 없다. 평생 한 직장에 같이 몸 담아온 사람이 명예롭지 않게 떠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같이 입사해 정이 들만큼 든 사람들일 때는 더욱 마음이 아파온다.

 

저 사람은 회사가 잘해 주었으니까 딴마음을 품을 리 없지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깨질 때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회사의 은덕을 많이 입고도 작은 일에 서운해하고 등을 돌리고 칼을 꼽는 게 사람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면서 상대적이다. 회사는 줄 만큼 주었다는 것이고 직원은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부딪친다. 그래서 작은 이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이 그랬다. 오갈 데 없는 사람을 거두어 가르치고 키워서 충복으로 삼았는데 그 사람이 발등을 찍을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은혜를 입은 사람이 비밀리에 회사의 기술을 베껴 새 공장을 짓고 하루아침에 경쟁업체 사장으로 나타났을 때 받는 당혹감이나 배신감은 어떠할까.

 

사람의 얼굴을 하고 해선 안 될 일이 믿음을 저버리는 짓이다. 그럼에도 역사의 많은 반역자들은 모두 총애를 받았던 최측근의 사람들이었다.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절대적인 신임으로 옥쇄까지 맡겼는데 어느 날 칼끝이 주인을 향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감지덕지하며 일하다가 세월이 가면서 욕심이 생겨 배신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진실로 믿음의 관계는 사람과 신()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선하면서도 취약한 것이 초심(初心)’으로 사는 일이다. 그만큼 초심을 끝까지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뜻이리라. ‘의리’ ‘신의’ ‘배신’ ‘배반이란 말이 모두 초심의 문제가 아닌가.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르고, 가난할 때와 부유해진 뒤가 다르고, 고생할 때와 성공한 후가 다른 것이 간교한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사람이 숭앙해야 할 덕목으로 시종일관’ ‘한결같이’ ‘처음처럼사는 것을 꼽는 게 아닐까.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몇 해전 출범시킨 자선단체 이름을 베이조스 데이원(DAY-1)’(처음처럼)으로 명명했다. 사는 곳은 달라도 인류를 관통하는 가치는 같은 맥락에 있다.

 

옛날, 길을 가던 한 나그네가 측간(화장실)에 가야 할 긴급한 상황이어서 아무 집이나 들어가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편이 출타 중인 부인 혼자 있는 집이었다. 부인이 머뭇거릴 수밖에. 그러자 나그네가 부인에게 엽전 한냥을 주면서 사정을 했다. 그래도 부인이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아녀자 혼자인 집에...” 머뭇거리자 다급해진 나그네는 탈탈 털어 엽전 닷냥을 주고야 측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볼일을 마친 나그네가 쭈그려 앉아 생각하니 생돈을 빼앗긴 것 같아 속이 쓰려왔다. 일어날 생각은 않고 계속 앉아 잃은 돈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급해진 사람은 이 집 마님이었다. 외출한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얼추 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 혼자인 집에 외간 남자를 들이다니, 남편이 이를 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여자가 조심스레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직 볼일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예 아직. 제가 좀 측간 일을 길게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말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좀 더 기다릴 수밖에는. 시간이 흐르자 다급해진 부인이 협상을 걸었다.

한 냥을 드릴 테니 그만 나오시지요.”

서두르면 더 힘들어집니다.”

남자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발을 동동 구르던 부인이 애끓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럼 닷 냥 다 돌려드리면 되겠어요? 제발 좀 부탁합니다.”

모르시는 말씀이십니다. 제 조부께서는 설사가 나온다고 재촉하는 조모님 때문에 측간 일을 다 못 보고 나가셨다가 그만 변고를 당하셨다고요."

나그네 대답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애가 탄 부인이 마지막 패를 던졌다.

 

그러면 닷냥을 더 얹어 드릴 테니 그만 좀 나오세요. 이렇게 빕니다.”

그제야 나그네는 ~’하며 측간에서 나왔다. 그리고 엽전 열 냥을 받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를 여측이심(如厠異心)’이라고 한다. ‘똥 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의롭게 신실하게 사는 일은 초심을 지켜 사느냐에 달려 있다.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이 아름답고, 처음과 나중이 같은 사람이 존귀하다.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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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적 마음과 올 적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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