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이 넓은 세상에서 조선에 태어났나?

왜 여성으로 태어났나?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나?

 

조선의 천재 여류문인 허난설헌(이름 초희)의 한()입니다. 27세 꽃다운

나이로 요절한 여인이 무슨 정한이 그리 많아 셋씩이나 한을 품었을까?

긴 장마 뒤 해가 쨍쨍한 날,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의 안동김씨 선영으로

허난설헌 묘를 찾았습니다. 당대최고의 문벌가답게 묘역은 크고 잘 정비돼

있었어요. 하단에 그녀의 묘가 있고 옆에 어린 남매가 잠들어 있더군요.

 

아버지 초당 허엽은 동서 분당 때 동인의 영수였고, 오빠 허성은

이조판서를, 소설 홍길동을 쓴 남동생 허균은 유··천주교를

섭렵하며 관직에 오르는 등 말 그대로 한 시대의 문벌 가문입니다.

강릉엔 난설헌의 생가 초당고택이 있어요.

 

글을 읽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남자가 할 일이다. 여자가 이에 힘쓰면 그

해로움이 끝없을 것.” 실학의 대가 이익의 말처럼 당시 여성은 문사의 길이

꽉 막힌 시대였어요.

그럼에도 천부적 재질을 보인 난설헌은 8세 때 시를 지어

후일 정조를 감탄시킵니다.

 

그녀가 풍부한 감성으로 시를 쏟아 내면, 허균이 암송해 훗날 난설헌집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하지만 15세 때 김성립과의 결혼은 그녀의 삶을 험한 가시밭길로

내몰았어요. 남편은 5대 연속 문과에 급제한 안동김씨 문벌가

자손이었지만, 가부장적인 가풍으로 시집살이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시 쓰는 며느리가 달갑지 않은 시모 사이에 깊은 갈등의 골이 패이고,

아내를 상대하기가 버거웠던 남편과도 화락하지 못했어요.

아내에 대한 열등감으로 기생방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태반이었습니다.

 

지아비에게 버림받고 눈물로 지새는 규방의 날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달래는 것은 시 뿐이었어요. 그 하나가 규방의 슬픔을 담은 규원입니다.

비단 띠 깁 저고리 적신 눈물자국/ 여린 방초 임 그리운 한이외다/ 거문고

뜯어 한 가락 풀고 나니/ 배꽃도 비 맞아 문에 떨어지네/ 달빛 비친 다락에

가을 깊은데 울안은 비고/ 서리 쌓인 갈밭에 기러기 내려앉네.

 

 

엄마 옆에 나란히 누운 어린 남매

그래도 삶을 지탱시켜주는 건 어린 남매입니다. 자식 자라는 모습에 보람을

찾던 그녀 인생에 잇단 불행이 찾아듭니다. 봉오리도 맺기 전 남매가 다

돌림병으로 죽어요. 오죽하면

지식을 앞서 보낸 어미의 슬픔을 참척(慘慽)이라했을까.

이때 쓴 시가 곡자(哭子)’.

 

지난해엔 귀여운 딸을 잃더니/ 이번 해엔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었네/

가슴 메어지도다 광릉의 흙이여/ 작은 무덤을 나란히 마주 세웠네//.../

응당 언니 아우의 혼들이 알아/ 밤마다 서로 손잡고 놀아라...”

 

남편은 가정과 더욱 멀어지고 그러는 사이 친정집도 몰락의 길을 갑니다.

경상감사였던 아버지가 상주에서 객사하고, 귀양을 간 큰 오빠도

객사하니 수족이 하나씩 잘리는 아픔을 느낄 수밖에요

 

여성의 재능을 부정한 시모의 학대, 무능한 남편, 친정의 몰락, 여성에 대한

사회의 억압, 두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몸이 쇠약해져요. 그럼에도 그녀가

지은 시와 문장은 방 한 칸에 가득 찰 정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시를 쓰더니 아름다운 연꽃 39송이 붉게

떨어진다.” 처럼 27세에 요절합니다. 여기서 ‘39’는 엄마와 남매의 나이를

합한 수, 또는 3·9의 승수라고도 해요.

그녀는 모든 작품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허균이 누님의 시편들을

 

수습해 중국에서 난설헌집을 내 격찬을 받지만 정작 조선에서 간행될 때는

찬사보다 비판이 컸어요. 규방여인이 점잖지 못하게 연애시나 썼다고.

연암 박지원까지 조선의 한 여자 이름이 중국에까지 퍼졌으니

유명하다고 할 수 있으나,

 

조선의 부인들은 일직이 이름이나 자를 찾아 볼 수 없으니,

난설헌은 호 하나만으로도 과분하다고 했어요.

여성이 호와 자를 다 갖기란 극히 이례적이었으니까요.

 

정한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삶에 종지부를 찍은 27년 생애.

시비(詩碑)앞에 서니 그녀의 일생이 너울거립니다.

왔다간 인생의 흔적이 고작 이것인가. 한없이 작아진 나를 만납니다.

-소설가/daumcafe/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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