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무섭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더위와 집중호우라는 이중고를 안겼던 여름도 조석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복절만 지나면 여름은 끝이라는 생각이 올해도 얼추 맞게 돌아갔다. 여름의 끝을 815일로 인식한 데는, 무주 구천동에서 형제들과 보낸 어느 해 여름휴가 때문이었다. 원래 계획은 3일이었는데 하루를 연장해 816일까지 머물기로 하고 주인을 만났더니, 15일 숙박료를 절반으로 깎아 주는 것이었다. 815일을 기준으로 숙박요금이 성수기에서 비수기로 바뀐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았다.

 

젊은 날에는 확 트인 바다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산이 좋아졌다. 염분이 밴 끈적거림 보다 청량한 공기를 맘껏 들이켜고 보송보송한 산들바람에 몸을 말릴 수 있는 청량한 산이 좋다. 9월을 시작하는 첫날, 운길산에 올랐다가 수종사를 찾았다. 수종사를 찾은 지가 기억 속에 가물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모습은 여전하고, 고즈넉함까지 옛 그대로였다. 활짝 트인 시야로 북한강의 끝자락인 양수리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가슴이 절로 열렸다.

 

어제의 8월과 오늘의 9월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작열하던 햇살이 기를 숙이고 떠들썩했던 여름의 소음도 멀어지고 있다. 청정한 바람이 여름의 잔해를 쓸어내면, 가을의 고요가 성큼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다. 수종사를 배경으로 팔짱을 끼고 북한강에서 오르는 강바람과 운길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을 타고 가을의 치맛자락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계절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아쉽고, 작별은 사람을 어질게 만든다.

 

견고하게 초록의 성을 쌓았던 무성한 잎새들과도 곧 작별이겠구나. 초록은 흩날리는 굴뚝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지난 세월, 백사장을 어지럽게 밟아놓은 젊은 날의 발자국들이 양수강 위로 아련하게 흔들렸다. 늘 시끌벅적했고, 뜨거운 아우성으로 소란스러웠던 그 많은 시간들. 뒤돌아보는 그날의 발자국들은 태반이 상처 나고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무수히 다짐하고 맹세했던 것들이 결국은 나를 바꾸어 놓지 못한 채 긴 세월을 흘러 보낸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도전은 나를 바꾸는 일이다. 그 중심에 천박하게 입만 열면 떠들었던 입이 있다. 아직도 그 입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고 굽은 언어로 나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오죽했으면 성철 스님까지 불기자심(不欺自心·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을 화두로 삼고, 해인사 백련암에 직접 쓴 휘호를 걸었겠는가. 성경에도 자신을 속이지 마라 하느님은 조롱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6:7)”라고 쓰여 있다.

 

호젓한 수종사에 계절의 전령처럼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風磬)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찰랑찰랑한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인생의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고 바람 든 스산한 생각들을 정결하게 빗질해 주는 것도 저 풍경소리이다. 청아한 가을바람소리를 듣기 때문일까. 유난히 풍경소리가 높고 맑게 들렸다. 휘저은 마음속 앙금들이 풍경소리에 가라앉으면서 잊고 지내온 일들이 살아났다. 한참을 그렇게 상념에 잠겼다.

 

사찰마다 풍경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있다. 왜 추녀 밑 풍경에는 단 한 마리의 물고기만 매달려 있지? 등산길에 목을 축이려고 절에 들릴 때마다 풍경에 달린 물고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풍경과 매달린 물고기 사이엔 어떤 궁합이 있는 걸까? 그러한 의문은 군 입대를 앞두고 들렸던 선암사에서 풀렸다. 친절하게도 스님 한 분이 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물고기를 피사체로 삼을 때 뒤로 배경이 되어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 구름?”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이 보이지요. 저 푸른 하늘은 바다를 뜻합니다. 어떤 상상이 떠오릅니까?”

 

그러고 생각하니 광대한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노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물고기 한 마리를 매달아 물의 원천인 바다를 만들었구나. 물이 풍부하면 어떤 큰 불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대부분 목조 건물인 사찰은 어느 곳보다 화재에 취약한 곳이므로, 화재 진압에 쓰일 풍부한 수자원을 기원했으리라. 파아란 하늘을 바다로, 넉넉한 수량을 확보해 오래된 목조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려는 지혜가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풍경이 상징하는 것으로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에도 눈을 감지 않는 특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물고기다. 평생을 눈을 뜨고 사는 물고기를 무엇에 은유했을까? 수행자를 지도하거나 경책 할 때 손바닥에 치는 죽비가 떠올랐다.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깨어 있으라. 언제나 혼돈과 번뇌에서 깨어나 일심으로 살아라. 그러면서 너도 깨닫고 남도 깨달을 지니.”

수종사에서 듣는 바람소리, 풍경 소리에 습하게 구겨진 마음을 펴 말리면서 시인 공광규(1960~ )의 시 수종사 풍경을 바람 타고 고요한 하늘로 퍼지는 풍경소리에 실어보냈다.

 

“...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목소리...”

딱 떨어지는 지금의 수종사 풍경(風景)이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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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고요와 만날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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