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9(목)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5천불이 넘어섰다. 그리고 코로나 방역 모범국가로 국제사회에서는 선진국으로 인정까지 받아 많은 국가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그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상 초유의 국제수지 적자. 치솟는 환율, 치솟는 물가, 치솟는 금리 등으로 국민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당은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여 전 대표와의 법정투쟁을 벌리면서 당권장악에 정쟁을 벌리고 있다. 그리고 야당 대표를 기소하여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각종 사건에 검찰이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아연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아 당선되고 나서 100여일이 지났는데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정치부재현상을 이루고 있다.

도대체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답답한 국민들은 애만 태우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세종대와의 애민사상이 우리 정치권에서도 발휘될 수 있다면 국정난맥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새삼 KBS 드라마로 방영된 대왕 세종에서 세종의 애민사상의 한 장면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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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대군 시절에 갔던 함길도 경성 땅에서 여진족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은 꼬마들을 만나 굶주린 아이들에게 이야기책도 읽어주면서 함께 생활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만났던 삼전도 백성들은 둔전과 조세의 이중고에 시달리며 참담한 삶을 하고 있어 글을 알지 못하여 그림으로 작성한 상소문을 세종께 올린다.

둔전(屯田)이란 국방의 임무를 위해 주둔하는 군대가 경작하는 토지로, 군량을 현지에서 확보하여 재정부담을 줄이고 군량 운반의 수고를 덜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된 것이다.

삼전도 백성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궁으로 몰려가는데 이를 역도로 몰아 사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세종은 먹고 살 것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하기 위해 도성까지 몰려온 그들을 살려야 내야지 역도로 몰아세울 수 없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세종은 자신의 백성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 떠는 자는 군왕이라 할 수 없다며 호위를 물리친 채 이들을 직접 대면을 한다. 그리고 굶주린 백성의 삶을 살피지 못 한 자신의 죄가 크다면서 무릎 끓고 삼전도 백성들에게 사죄를 청한다.

그리고 삼전도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둔전제를 폐지하고 사대부와 왕실의 반대에 무릅쓰고 그들의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조세개혁을 단행하였다.

붕건사회에서도 이런 결단과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 임금으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애민정신의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오늘날에도 세종대왕을 역대상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추앙하고 있지 않은가?

 

세종대왕은 글을 몰라 죄인으로 취급받는 일이 없도록 억울하면 글로 항소하게 똑똑한 사람은 한나절이면 익힐 수 한글을 만들었다

그리고 관노에게 만삭 출산 전 1달과 출산 후 100일을 휴가를 주었고 남편 노비도 1달 휴가를 주어 출산 후 어린아이들을 돌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에게 악사를 시켰고 가난으로 혼인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겨울에 먹을 것을 충분히 주고 지켜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의녀를 교육시켜 아픈 부녀자를 돌보게 했던 일들은 국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는 조치들이다.

봉건사회에서 절대권력을 가진 임금이 이렇게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 동기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태종은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일으킨 창업 일등 공신이었다. 태조를 측근에서 보좌한 유학자 출신 관료들과는 달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형제들도 죽이고 정도전과 같은 거물 정적을 제거하고 처갓 집도 멸족시켰다.

장남 양녕대군은 외갓집에서 자라 외삼촌 민무구, 민무질 등 4형제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자랐다. 그 외삼촌들이 세자 양녕대군을 왕위에 올려 놓으려는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이런 무서운 집념의 소유자이자 잔인한 아버지 밑의 장남인 양녕대군은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쳤다. 즉 양녕대군은 공부도 게을리하고 주색을 가까이해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충녕대군은 왕위가 자신에게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충녕대군은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끈기가 있었고 학문을 좋아했고 태조와 태종 간의 갈등, 아버지의 무자비한 정적 제거, 양녕대군의 엇나간 행실 등을 지켜보면서 성장했다. 심지어 세종 즉위년에 상왕의 지시로 세종의 장인인 심온이 사약을 받고 죽는 일 까지 겪었다.

즉 태종은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면서도 병권은 세종과 공유했으나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바로 첫해에 병조참판 강상인 등이 군사에 관한 사항을 세종에게는 보고하고 상왕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

상왕은 취조 과정에서 그들의 배후에 세종의 장인인 영의정 심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왕은 심온에게 사약을 내리고 그의 아내와 형제들을 모두 관노로 만들었다. 죄인의 자식들이란 이유로 왕비도 폐위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으나 그것만은 허락되지 않았다.

 

세종은 유학자 출신 사대부들이 도저히 경험하지 못했을 환경을 겪으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깊어지고 위대한 애민사상이 발아되는 바탕을 형성했던 것이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위해서 훌륭한 임금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과 노력들이 세종을 위대한 임금으로 만들었다.

세종의 애민정신은 정쟁을 뛰어넘는 위대성이며 이를 발현시켜 나갈 때 국가는 한 단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다

 

요즈음 민생은 구렁텅이 속에 빠져 있는데도 정쟁만을 일삼고 있는 정치권에게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본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한 일일까?.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윤석열 대통령께서 세종의 애민사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민생을 구원해 내고 국가 운명의 되살려 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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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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