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9(목)
 

20대 때는 세상을 바꾸겠노라. 30대는 아내를 바꾸어 놓겠노라, 40대에는 자식을 바꿔놓겠노라고 다짐했는데, 50대 이르러 보니 나는 아무것도 바꾸어놓은 것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변화되면 이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

 

미국 특파원 생활을 끝으로 잘 나가던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50대에 목사님이 되면서 그가 남긴 글이다. 그 나이에 인생을 그토록 비틀 수 있는 과단성 있는 용기와 결행은 어떤 신념에서 나온 것일까? 이를 두고 열이면 열 사람 모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렇게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고, 점차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끊으면서 간간이 먼발치로 그의 소식을 들었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고, 교회 개척에 나서 힘들어한다는 말까지.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서, 때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된 그를 걱정했던 마음에 언젠가부터 존경스러움이 찾아들었다. 소명감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결연한 자유 의지인가.

 

우리가 안정된 중장년의 시기를 보낼 때,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광야의 길을 열어간 그의 모습에서 그것이 짧은 인생의 소망이겠다 싶었고, 행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십 년이 지나 친구들이 은퇴 세대가 될 즈음, 다시 신문에 오른 그의 사진과 칼럼을 보았다. 청년이 많은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그는 사진에 검은 올이 하나 없는 순백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의 글은 원정을 떠나는 장수의 출사표처럼 다가왔다. 정년을 앞당겨 젊은 목사를 청빙해 자리를 넘기고, 그는 더 먼 길로 아프리카 사역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63세라는 가볍지 않은 나이에. 글에서 전해지는 글향을 느꼈다. 좋은 말과 글은 에너지가 되고, 선한 마음에서 나온 글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차분하고 강인하라.’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사용한 말을 글의 제목으로 차용하고 있었다. 젊은 세대를 향한 메시지는 뜨겁고 힘이 넘쳤다. 어쩌면 자신에게 향한 다짐으로도 보였다. 먼바다에서 자신의 몸보다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이 자신을 향했던 주문 ‘be calm & strong!'처럼. 어떤 극한 상황에 몰릴 때일수록 침착하게, 강하게밀고 나가라는 의지가 느껴졌다.

 

노인은 84일간 새벽에 나가 땅거미가 지도록 고통의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다 매일매일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럴수록 더 먼바다로 나가 열공을 드렸고, 마침내 청새치를 잡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노인과 바다가 명작으로 읽히는 것은 삶이 내재하고 있는 결정론자유 의지간의 다툼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그 다툼을 그린 소설의 주인공은 자유 의지의 상징이었다.

 

결정론은 인간이 상황이란 힘 아래 움직이는 허약한 존재이다. 외부 압력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론자이지만, 자유 의지는 라고 답 해야 할 때 아니오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의지에 있다. 청년들에게 고난과 질곡 앞에 비굴해지지 말고, 상황에 복종하지 않는 자유 의지의 젊음으로 살라는 것이 그의 글에서 역동했다. 그 역시 분명한 자유 의지의 사람이었다.

 

그는 때 늦은 나이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고 광야에 홀로 뛰어 나가 계속되는 난관 앞에 굴하지 않고 침착하고, 담대하게자신을 지키고 혹한 시련을 견뎌냈다. 10년 사투 끝에 성공한 목회자란 평가를 받기 무섭게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다들 은퇴를 했거나 앞둔 시점에서 쓸쓸한 노년생활을 준비할 때, 그는 더 먼바다로 나가 제 몸집보다 큰 청새치를 끌어올리려고 얼마나 진땀을 흘려야 할까.

 

그가 떠나기 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남긴 말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일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명과 열정의 문제다.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면 그때가 적기이다. 일을 내가 다 마치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우리가 못 이룬 건 다음 세대가 잇고, 내가 못하면 후임자가 이어감이 생명의 순환 질서일 테니까.?

 

우리는 너나없이 바람이 불면 지는 낙엽에 다름 아니다. 낙엽이 떨어져 잘 썩으면 땅이 비옥해져 좋은 열매가 맺힌다. 사람도 세월이 가면 모두 낙엽처럼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가는 사람이 있고, 자기 몸 하나 보듬다가 떠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에게라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빈손으로 왔다 가는 인생은 아닐 것이다. 더더욱 

나의 만족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수단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종교적으로도 성공한 삶이 아닐까?

 

나의 인생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애석함이 있다. 찾아온 생의 전환 기회를 담대하게 붙잡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현실에 나를 가두고 시선을 거두었다. 선택을 해야 할 순간, 상황론자의 멍에를 떼려야 떼지 못하고, 꽃다운 시절을 이상과 현실이 뒤엉켜 혼돈 속에 살았다. 이젠 좋고 싫을 것도 없는, 그것도 내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가슴 한 구석에 봉인해 둔 웅크린 나를 풀어주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망설일 때가 곧 시작할 시간이고, 결정하는 순간이 빠른 출발이 된다. 그러므로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는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상황론에 휘둘리지 말고, 침착하고 담대하고 강하게! 매일매일 자유 의지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야겠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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