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9(목)
 

똑같은 인생을 살았는데 어떤 이는 100년을 살고도 한이 맺혀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분이 있고, 또 다른 이는 47년을 살고도 이젠 여한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우리네 인생을 잘 살고 못 사는 것으로 금을 긋는 것일까?

 

얼마 전, 친구가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미뤄두었던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느낀 감상을 날 것 그대로 보내왔다. 친구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가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면 다 같은 시간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흘러가면 다 세월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스치듯 왔다 사라지는 바람 같은 시간 말고, 깊이로 흐르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감성 깊은 언어로 쓴 친구의 편지를 재구성했다.

 

깔끔한 성품 탓에 신변 정리도 빨랐던 분이라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어머니의 작은 소품 하나에도 생전의 체취가 밴 것들이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을 생각에 잠겨 어머니의 시간을 돌아보던 아들이 장롱 서랍 깊숙이에서 지갑 하나를 꺼내 들었다. 특별한 날에 어머니 손에 들렸던 지갑. 아버지가 소싯적 서울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선물로 사 오신 그 지갑이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제자였던 어머니와 결혼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범학교를 나와 첫 부임한 학교의 제자였다. 열 살이란 나이 차로 처가의 반대가 심했고, 결혼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하지만, 처가 어른들 마음을 돌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낙 사는 모습이 어른들 보시기에 살뜰하고 신통했으니까.

 

그렇게 두 분은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꾸며 사셨는데, 이를 시기한 것은 얄궂은 운명이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폐병을 앓아온 아버지가 훌쩍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서른일곱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기고···.

 

그 시절엔 폐병이 흔한 병이면서 무서운 병이었다. 발단은 교사 신검에서 나온 이상 소견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아버지는 열 달 간 공무원 휴양소에서 요양을 하셨고, 다행히 경과가 좋아 이듬해 복직을 하셨다. 하지만 복직 1년도 채 안 돼 병이 재발했다. 그리고 1년 뒤 이생의 삶을 끝내셨다. 진액을 다 쏟은 어머니의 곡진한 간호를 물리시고.

 

언제부터인가 아들은 자식 하나 바라보며 수절하는 어머니께 죄송함을 느꼈다. 내가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 저변에는 어머니와 같이 아버지의 제자였던 한 남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한 여자를 스승에게 빼앗긴 불운한 남자는 결혼 1년 만에 아내를 잃고 오랫동안 혼자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쩌면 그분에겐 기회일 수 있었다. 외가 어른들이 은근히 재혼을 부추기는 데다, 시아버지도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며느리를 가로막을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아버지 3년상이 끝나길 묵묵히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결정적 순간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보고, 남자는 더 이상 연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뤄온 이민을 떠났다. 비로소 어머니의 인생 길이 정리된 셈이 되었다.

 

아들 손에 들린 어머니의 유품인 지갑. 38년 비원이 담긴 듯한 지갑을 아들은 선뜩 열지 못했다. 그러다 똑딱! 하는 소리가 침묵을 흔들자 지갑이 속살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38년 된 두 장의 편지가 단정하게 접혀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휴양소 생활을 하실 때, 면회를 왔던 어머니를 버스에 태워 보내면서 손에 쥐어준 것이었고, 다른 한 장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편지를 읽고 휴양소로 보낸 답신이었다.

 

종이 한 장에 쓰인 아버지의 편지엔 자작시 한 편이 그림과 함께 쓰여 있었다. ‘꽃은 왜 향기를 내나.’ 열세 줄짜리 시는 구절마다 행간마다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끓는 정분을 꽃가루처럼 뿌리고 있었다. 삽화처럼 넣은 그림은 어머니에게 들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주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보낸 답장에도 시간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생각했어요. 휴양소 오솔길을 손잡고 걸었던 그 한나절의 의미를 새겼어요. 당신의 사랑이 제 몸에 흘러드는 강물이라면 나는 일평생 당신을 가두는 댐이 되겠다고···”

 

아들은 두 분이 주고받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들은 그제야 어렴풋이 잡히는 게 있었다. 그날, 아버지와 함께 한 한나절이 아버지 사후 38년보다 깊었다는 것을. 어머니의 38년은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깊이로 흐른 시간이었다. 고통받는 사람의 하루는 1년처럼 길어도, 연인들의 시간은 늘 짧고 부족한 것처럼. 그날 어머니에게 찾아온 그 카이로스의 시간이 38년 크로노스 시간을 견디게 해 주었다는 것을 아들은 알았다. 두 분의 정분이 그렇게 깊이로 흐르면서 백년설의 두께를 만들었다는 것도.

 

시공을 넘는 깊이와 두께를 만든 두 분의 삶과 사랑에 아들의 가슴은 한동안 먹먹함뿐이었다. 어머니가 사신 그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들은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죄송했다. 눈을 감았던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모님 사진 앞에 섰다. 입가에 고요히 웃음을 머금은 두 분의 모습이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분은 47년을, 한 분은 76년을 사시고 가셨지만, 여한이 없이 사신 분들처럼 보였다. 그래서 떠나실 때 그리도 평온하셨구나.(14.0)

-소설가 /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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