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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을처럼 아름답던 식탁의 축제
    사람들이 그렇게도 갈구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골드러시를 따라 미 서부로 향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찾았을까. 공자는 제자의 질문에 ‘행복은 없다’고 간단명료하게 답합니다. 공자는 이에다 ‘인생에는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행복이란 눈이 혹할 보석 같은 게 아니라고 내 나름 유추 해석합니다. 거대한 바위 밑 은밀한 곳이나 화려한 샹들리에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일상의 그 사소한 것들, 그 자체에 있음을 말하려 한 것으로 주석을 답니다. 행복은 더 이상 파랑새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닌, 바로 우리의 일상에 흘러갑니다. 매일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듯 행복도 일상이란 우물에서 길어 올려야 합니다. 돌아보니 그 많던 내 일상들이 다 허공에 흩어졌습니다. 우주의 어느 시간보다도 값진 것들입니다. 나이가 들면 외롭다고 합니다. 수많았던 그 일상들을 되돌릴 수 없고 함께 할 수도 없다는 것 때문이겠지요. 자식들로 들썩이던 공간은 소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흐릅니다. 전화도 오고 주말이면 찾아주니 반갑기도 하지만 잠시 머물다 떠나고 나면... 이젠 막내마저 직장 따라 지방으로 갔으니 그마저도 용이하지 않습니다. 옛말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가 지척이고, 마음이 멀어지면 지척도 천리”라는 말... 형제간의 소통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통화를 해도 쉽게 대화거리가 궁해지죠. 전 같으면 자식걱정에, 자랑에, 줄줄이 엮을 테지만 빈 둥지끼리 나눌 것은 그저 서로의 건강 걱정이나 해주면 끝입니다. 존경하는 선배와 만났습니다. 큰 아들은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현지에 눌러 앉은 지 11년째랍니다. 오늘은 손자가 화상통화를 할려나? “아참, 이번 주는 바쁘다 했지? 그래 바빠야지.” 일본에 있는 둘째 딸은 엊그제 통화에서 아이 교육이 힘들다고 넋두리하던데. “타지도 아닌 타국 생활이니 그렇겠지.” 제 둥지를 찾아간 자녀들한테 옛 일상을 더듬자고 할 일은 더욱 아닙니다. 그렇다고 넋두리만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 거쳐야 할 여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요. 늘 아쉽고, 부족하고, 늘 그리움이 많은 게 우리네 인생인 듯합니다. 그래도 아직 남은 인생이 있고 걸어야 할 여정이 있고, 맞이할 일상이 남았으니 희망이란 새 한 마리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아 주길 기대합니다. 그러다보니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하늘의 은총입니다. 그분만이 내 남은 여정에 행복의 무늬를 함께 짜 주실 분이 시니까요. 식탁의 빈자리를 채워주시고 내가 입술을 열어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을 펴면 말씀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자고 합니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아이들과 즐기던 저녁 식탁의 축제는 흩어져갔지만, 그 분과 함께 하는 식탁의 축제는 노을빛처럼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사랑과 그리움이 묻은 집에서, 가족의 기억들이 숨 쉬는 공간에서, ‘고뇌는 내가 갈아입는 옷 중 하나이니 나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기분이 어떤지 묻지 않는다 나 스스로 그 상처받은 사람이 된다' (월트 휘트먼의 '나의 노래' 중에서 글 이관순(소설가/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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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 시간보다 소중한, 함께 할 사람
    살면 살수록 강해지지 못하고 약해지는 게 사람입니다. 유독 사람만 신앙에 의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몸집도 키도 작아지고, 꿈도 희미해지고, 늘어나는 건 나이테뿐입니다. 친구 병문안을 다녀오며 많은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하나님이 새 생명을 선물하셨어. 받을 자격이 없는데 내게” 내 손을 잡으며 친구가 건넨 말입니다. 25일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는 친구는 완전 다른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가장의 책무보다는 평생 자기가 좋아한 일에 빠져 살았지요. 전국의 명산을 섭렵하더니 세계의 명산 순례를 끝낼 만큼 건강도 좋았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지어야 할 짐을 고스란히 떠안은 건 아내였죠. 그가 만든 그늘 때문에 가족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당신 성당에만 나가요. 그 이상 더 바라지 않을 게요.” 모든 걸 체념하고 남편 구원에만 희망을 걸었지요. 그러한 아내에게 ‘죽을 때 가까워지면 고백해 볼게’라고 했던 그가 큰일을 겪더니 달라진 것입니다. 애나 어른이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단어가 ‘선물’일 것입니다. 주고받는 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랑’ 같은 귀한 어휘입니다. 친구를 눈물겹게 한 고결한 선물, 감당이 안 되는 분에 넘친 선물, 생명은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값진 선물이겠지요. 작가 볼테르는 창조자가 내려주신 선물로 ‘생명’을 꼽았고, 프랜치스코 교황은 ‘시간’을 말했습니다. 친구는 나를 보기 며칠 전 병상에서 영화 ‘라스트 미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콕 집어 말하는 것 같아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라스트 미션(the mule 노새)’은 어느 낙제점 가장의 참회록입니다. ‘시간보다 소중한 것’을 들려 줍니다. 실존인물을 각색한 주인공 역을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사진)가 맡았습니다. 원제목에서 보듯 주인공 얼의 삶은 ‘노새’를 닮았지요. 한 가지만 생각하는 노새....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삶에 익숙한 얼은 화훼농장을 가꾸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 붓습니다. 백합경연대회는 그가 기다려온 무대입니다. 대회마다 우승컵은 그의 차지였고, 그 순간 느끼는 행복감은 컸습니다. 이를 삶의 낙으로 삼았던 얼이 생의 끝자락에 이르면서 눈물을 짓습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은 대개가 때늦은 ‘후회’입니다. 분신과도 같던 꽃 농장이 기울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어느 날, 가족에게 평생 좋은 일을 못해온 얼이 거금을 내밉니다. 꽃 농장이 압류될 만큼 쫄딱 망한 직후여서, 아내는 돈의 출처를 수상히 여깁니다. 비밀은 영화의 원제(原題)인 ‘mule'에 숨어있지요. 얼이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마약 운반책을 맡은 것입니다. 운반 물품이 마약임을 모르는 채 말입니다. 얼은 가족에게 진 마음의 빚을 보상하기 위해 노새처럼 일합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위독하다는 비보를 듣습니다. 매달 시간 엄수가 밀매조직의 생명임에도 얼은 병원으로 달려가 아내를 위로합니다. “사랑해 여보” 수십 년 만에 해보는 말이지만 낯설지 않습니다. 아내가 기뻐합니다. 얼은 아내의 눈을 보며 약속합니다. “앞으로 더 사랑할게 더 많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범죄 조직은 규칙을 위반한 얼의 제거에 나섭니다. 이쯤에서 작가는 말합니다. “시간보다 더 중요한 하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 이라고. 너무 늦긴 했으나 이 진리를 깨달은 90세의 얼은 평생 등졌던 딸과 함께 할 시간을 그리며 마지막 배달에 나섭니다. 얼은 운반 물품이 마약임을 알게 되고 끝내 마약 단속국과 맞닥뜨리는 운명의 갈림길에 섭니다. 그는 어떤 길을 선택을 할까요?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최근 펴낸 신작에서 “삶의 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각별한 지혜가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굽이쳐온 삶의 길목에서 찾아낸 인생의 지혜가 겸양으로 들리지만, 살고 또 살아봐도 알지 못할 게 인생이라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퍼내고 퍼내도 줄지 않는 샘물 같이 말입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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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시간보다 소중한, 함께 할 사람
    살면 살수록 강해지지 못하고 약해지는 게 사람입니다. 유독 사람만 신앙에 의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몸집도 키도 작아지고, 꿈도 희미해지고, 늘어나는 건 나이테뿐입니다. 친구 병문안을 다녀오며 많은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하나님이 새 생명을 선물하셨어. 받을 자격이 없는데 내게” 내 손을 잡으며 친구가 건넨 말입니다. 25일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는 친구는 완전 다른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가장의 책무보다는 평생 자기가 좋아한 일에 빠져 살았지요. 전국의 명산을 섭렵하더니 세계의 명산 순례를 끝낼 만큼 건강도 좋았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지어야 할 짐을 고스란히 떠안은 건 아내였죠. 그가 만든 그늘 때문에 가족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당신 성당에만 나가요. 그 이상 더 바라지 않을 게요.” 모든 걸 체념하고 남편 구원에만 희망을 걸었지요. 그러한 아내에게 ‘죽을 때 가까워지면 고백해 볼게’라고 했던 그가 큰일을 겪더니 달라진 것입니다. 애나 어른이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단어가 ‘선물’일 것입니다. 주고받는 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랑’ 같은 귀한 어휘입니다. 친구를 눈물겹게 한 고결한 선물, 감당이 안 되는 분에 넘친 선물, 생명은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값진 선물이겠지요. 작가 볼테르는 창조자가 내려주신 선물로 ‘생명’을 꼽았고, 프랜치스코 교황은 ‘시간’을 말했습니다. 친구는 나를 보기 며칠 전 병상에서 영화 ‘라스트 미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콕 집어 말하는 것 같아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라스트 미션(the mule 노새)’은 어느 낙제점 가장의 참회록입니다. ‘시간보다 소중한 것’을 들려 줍니다. 실존인물을 각색한 주인공 역을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사진)가 맡았습니다. 원제목에서 보듯 주인공 얼의 삶은 ‘노새’를 닮았지요. 한 가지만 생각하는 노새....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삶에 익숙한 얼은 화훼농장을 가꾸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 붓습니다. 백합경연대회는 그가 기다려온 무대입니다. 대회마다 우승컵은 그의 차지였고, 그 순간 느끼는 행복감은 컸습니다. 이를 삶의 낙으로 삼았던 얼이 생의 끝자락에 이르면서 눈물을 짓습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은 대개가 때늦은 ‘후회’입니다. 분신과도 같던 꽃 농장이 기울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어느 날, 가족에게 평생 좋은 일을 못해온 얼이 거금을 내밉니다. 꽃 농장이 압류될 만큼 쫄딱 망한 직후여서, 아내는 돈의 출처를 수상히 여깁니다. 비밀은 영화의 원제(原題)인 ‘mule'에 숨어있지요. 얼이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마약 운반책을 맡은 것입니다. 운반 물품이 마약임을 모르는 채 말입니다. 얼은 가족에게 진 마음의 빚을 보상하기 위해 노새처럼 일합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위독하다는 비보를 듣습니다. 매달 시간 엄수가 밀매조직의 생명임에도 얼은 병원으로 달려가 아내를 위로합니다. “사랑해 여보” 수십 년 만에 해보는 말이지만 낯설지 않습니다. 아내가 기뻐합니다. 얼은 아내의 눈을 보며 약속합니다. “앞으로 더 사랑할게 더 많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범죄 조직은 규칙을 위반한 얼의 제거에 나섭니다. 이쯤에서 작가는 말합니다. “시간보다 더 중요한 하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 이라고. 너무 늦긴 했으나 이 진리를 깨달은 90세의 얼은 평생 등졌던 딸과 함께 할 시간을 그리며 마지막 배달에 나섭니다. 얼은 운반 물품이 마약임을 알게 되고 끝내 마약 단속국과 맞닥뜨리는 운명의 갈림길에 섭니다. 그는 어떤 길을 선택을 할까요?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최근 펴낸 신작에서 “삶의 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각별한 지혜가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굽이쳐온 삶의 길목에서 찾아낸 인생의 지혜가 겸양으로 들리지만, 살고 또 살아봐도 알지 못할 게 인생이라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퍼내고 퍼내도 줄지 않는 샘물 같이 말입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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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1
  • 희망은 한 마리 새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장영희 교수(시인)가 세상을 버린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 작은 몸집으로 장애를 이겨내고 병마와 싸웠던 생전의 모습이 은화처럼 맑고 밝게 떠오릅니다. 세 차례 암이 발병하는데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의연했던 삶, 투병 와중에도 약속한 글을 쓰고 계획한 책을 펴내며 진한 감동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신다."며 희망을 절창했습니다. 그녀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영미시 산책’은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화제가 됐었지요. 선정한 시들도 아름답지만, 그녀의 시 해설은 더욱 감칠맛 나는 삶의 매력으로 넘쳐났습니다. 그녀는 2009년 봄날, 친구인 화가 김점선과 두 달 간격으로 이 땅과 이별을 했습니다. 그녀의 책에 삽화를 그렸던 김점선, 따뜻한 시어로 영혼을 보듬는 시인 이해인(수녀)과 깊이 교류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녀가 ‘영미시 산책’에서 소개한 시 가운데, 에일리 디킨슨의 ‘희망은 한 마리 새’는 고단한 인생을 사는 우리들 가슴에 위로와 잔잔한 감동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희망은 한 마리 새/ 영혼 위에 걸터앉아/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많은 이의 가슴을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 노래 멈추지 못하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하나 아무리 절박한 때도 내게 빵 한 조각을 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희망은 우리의 영혼 속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다’고 했습니다. 기쁘고 행복할 때는 잊고 살지만, 마음이 아프고 절망할 때 어느 새 곁에 와 손을 잡아줍니다. 희망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간절히 원하여 생기는 게 아니라, 상처에 새살이 나오듯, 죽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오듯, 희망은 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할 때, 가만히 마음속 깊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합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속삭일 것이라며... “괜찮아, 이게 끝은 아닐 거야. 넌 해낼 수 있어.” 쉬지 않고 속삭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봄이 빗속에 노란 데이지 꽃을 들어 올리듯/ 나도 내 마음을 들어 건배합니다/ 고통만을 담고 있어도/ 내 마음은 예쁜 잔이 될 겁니다' 그녀가 소개한 사라 티즈데일의 '연금술'이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시인은 우리의 마음을 잔에다 비교합니다. 때로는 희망과 기쁨을, 때로는 절망과 슬픔을 담는 잔으로요. 그녀의 마음속 잔에는 고통만 담겨 있을 텐데, 빗물을 금빛으로 변화시키는 데이지 꽃처럼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겠다고 전합니다. 우리 마음의 잔에도 쓰디쓴 고통만이 담길 때가 많지요. 그것을 빛나는 지혜와 용기로, 평화와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삶의 연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삶의 연금술사가 되기란 그렇게 만만한 일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장영희 교수는 생전에 ‘희망은 하늘이 주신 선물‘로 표현했습니다. 떠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그녀가 날린 희망이란 작은 새 한 마리는 오늘도 우리들 마음의 창을 두드립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마세요 넘어지더라도” 소포클레스도 “인류의 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것은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책을 보고 좋은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는 것도 궁극적으로 좀 더 아름답게 살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그 욕구가 ‘희망이란 한 마리 새’로 우리의 마음에 날아와 앉는 것이지요. 소설 같은 긴 산문 글도 좋지만, 좋은 시를 찾아 읽는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요. 짧은 시간에 삶에 위로와 격려를 받는 데 이만한 것이 없을 테니까요. *소설가 / daum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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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내 가슴엔 칭얼대는 아이가 산다
    우리는 세대를 구분할 때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 애나 어른이나 한 명 한 명이 다른 인생이고 그대로가 작은 우주인데, 그렇게 살피지 못하고 한 묶음으로 처리할 때가 있다. 칠팔십 대를 생물 연령만으로 따져 사랑방 상노인으로 규정하고, 사오십 대를 싸잡아 아저씨로 병렬 처리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온다는 것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시 ‘방문객’ 중 세월에 휘감겨 살아온 사람들을 향한 상찬 같기도 하고, 용하게 인생살이를 살아낸 사람들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 같기도 하다. 일생을 산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대로 개선장군이다. 보이지 않은 가슴속에는 비바람에 시달리고 삭풍 한설을 견디느라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보듬고 있을까. 인생을 뒤돌아보면 저마다 주어진 한 생애를 성심껏 사는 것이니, 그곳에 시시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에 대한 선의는 인간의 의무이다. 사람이 사람을 선의로 대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 하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우스꽝스럽고, 좀은 누추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라도 존중하지 않으면 나 또한 존중받기를 포기하는 행위이다. 사람의 외모는 다 달라도, 속 사람은 다 같은 귀함이다. 잘났든 못났든 사람에게는 각기 유아독존의 영역을 살아가니까. 누가 나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고, 혐오스럽게 해도 “저 사람의 사는 방법이려니”하고 넘길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원만하게 더불어 사는 것이 지혜이지, 까칠하게 보이는 것이 잘 사는 삶이 아니다. “넌 사는 게 왜 그 모양이냐?” 걸핏하면 옆사람을 향해 핀잔을 주는 친구가 있었다. 하는 말이 좀 어설프고 말이 조금만 주제를 이탈해도 면전에서 쏴 부치는, 그래서 대포라는 별명을 얻은 친구였다. 그러던 그가 위암 수술을 받았다고 해서 집으로 병문안을 갔다. 체중이 10kg 이상 빠지고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모습을 보자 하니 세월이 저렇게도 흘러가는가 싶었다. 자기 자신은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바꾸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유일하게 약발이 잘 듣는 한 가지가 있다면 사람을 인격체로 예우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일 아니겠는가. 세상을 염세했던 쇼펜하우어도 '만인에게 할 일은 오직 선의로 대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시 하나 더, 장석주의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대추 한 알에 우리 인생을 담은 시인의 관찰이 융숭깊고 광휘하다. 잘 생긴 대추나 못 생긴 대추나 똑같이 추운 밤을 견뎌냈다. 비바람과 천둥, 번개, 벼락을 맞으며 상처를 보듬었다. 하나하나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아 결실한 것들이다. 대추처럼 사람도 둥글둥글 되기까지, 제혼자 노력으로는 될 리가 없다. 오스스 몸을 떨며 무서리를 맞고, 쨍쨍 내려쬐는 땡볕에 그을려야 했다. 초승달이 둥근달이 되고 이지러지기를 또 얼마나 바라보며 기다렸을까. 시련을 이기지 못하면 붉고 둥근 대추 한 알이 절로 영글 수 없듯이,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지 못하고 구박함은, 선의를 저버리는 것이다. 한 자리에서도 화려하게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뒤늦게 서리를 맞으며 꽃잎을 여는 꽃도 있다. 예로부터 사람을 불의로 예단함을 죄악이라고 했다. 물을 주고 북을 주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 해도,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오로지 하늘의 소관이 아닌가. 이 나이가 되니 이따금 살아온 내 몸이 기특하고 대견스러울 때가 있다. 까칠한 상전을 모시느라 몸인들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나! 까다로운 성질을 못 이기고 세상에서 당하면 당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몸을 구박하고 마구 굴려 많은 탈을 불렀다. 이제는 그렇게 쇠잔해진 몸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이를 잘 깨치는 것이 천리를 아는 일이다. 바퀴의 위아래는 시간이 되면 바뀌는 법이다. 어제는 위였다가 오늘은 아래로 내려온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잘 토라지지만 몸은 더 잘 삐친다.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로 몸이 삐칠 때는 나 스스로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큰 병이라도 찾아오면 어쩌나. 그러면서 깨달았다. 노인의 마음에는 칭얼대는 아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칭얼대고 투정이 많은 어린아이의 엄마일수록 아이를 달래는 그만의 기술이 있는 법이다. 그 기술이 하루아침에 생겨날 리 만무다. 오랜 시간 아이에게 볶이고 속을 끓여야 쌓이는 내공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야 하리라. 나이가 든다는 건 마음에 욕망을 거두고 감사의 파동을 높이라는 것이다. 노인의 일상을 편하게 가꾸는 방법이다.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유익을 주는 것은 감사한 마음에 있다. 우리는 몸을 내 것이라 착각하고 멋대로 대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일생을 거역하지 않고 나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한 몸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을 때가 되었다. 몸과 분쟁하지 않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그래야 몸이 칭얼대지 않고 나도 편안하다. “못난 나를 위해 한평생 수고해줘 고맙네. 끝까지 잘 좀 부탁하네.” 오늘도 나의 가슴에는 징징대는 어린아이가 살고, 나는 그와 화해 중에 있다. -소설가/daumcafe/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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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4
  • 사랑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산행 멤버 중에 두 사람의 영구 결번이 생겼다. 한 사람은 죽지 못할 만큼 사랑해서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도 결혼을 강행하고 잘 산다 싶었는데, 10년 전 이혼하고 미국으로 떠난 여성이다. 결혼도 성격대로 급행으로 몰아치더니 헤어질 때도 한순간 쿨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1년 있다가 현지에서 미국인과 재혼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또 한 사람은 평생을 한 여자를 가슴에 담고 비혼으로 산 남성이다. 중학교 선생이었던 남자는 학부모인 여자를 만나면서 그리움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나 하나의 사랑인 것이, 난생처음 한눈에 반한 여자가 유부녀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가 가난한 집안을 살리려고 열두 살 연상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애틋한 일기를 썼다. 이를 눈치챈 친구들이 비극을 자초하지 말라고 많은 권면을 했지만 사랑이 질서 정연한 이론으로 성립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남자는 마음에 품은 한 여자의 안부를 평생 먼발치에서 들으며 살았다. 같은 신도시에 사는 까닭에 운이 좋으면 스치기도 하고 짧은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학부모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딱 한 번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을 뿐이다. 남자는 입을 열려고 애쓰지 않았다.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사랑은 가슴으로나 품을 일이라 자위하면서 그날의 일기를 썼다. 그렇게 5년쯤 지났을 때 여자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조문을 마치고 접견실에 잠시 앉아 그녀가 타다 준 커피를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난 뒤 우연하게 길에서 두 사람이 마주쳤다. 마침 큰일을 치른 뒤라 자연스럽게 길 옆의 스타벅스에 들어가 인사를 나누었다. 장례는 잘 치렀느냐고? 문상을 해주셔서 고맙다고…. 그렇게 일상의 얘기들을 주고받다가 여자가 시계를 보았다. 오늘 병원 예약이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푸른 6월의 햇살이 눈에 부셨다. “날이 참 좋네요.” “그러게요.” “잘 다녀오시고 밝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자의 인사에 여자는 웃으면서 목례를 하고 헤어졌다. 그러고 또 얼마를 지났을까. 가을비가 추적되는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와 만났다. 전 같지 않게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날도 차가운데 따뜻한 커피나 들고 가시라고 여자의 소매를 끌었다. 잠시 망설이던 여자가 따라나섰다. 남자는 그날 스타벅스에서 여자로부터 암투병 중인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곧 입원해야 한다는 말도 듣게 된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수술 후 회복 중인 그녀를 병실로 찾았다. 고통이 심했는지 짧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많이 수척해 보였다. 간호사의 말로는 수술은 잘 됐지만 말기암이라 예후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사흘돌이로 남자는 여자를 찾았다. 쓸쓸하게도 그녀에겐 병상을 지켜 줄 만한 가족이 없어서였다. 가족이라고는 유일하게 직장에 나가는 여동생 하나뿐이었다. 죽은 남편이 형제가 없는 데다 하나뿐인 아들마저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 오지에 나가 있었다. 귀국할 수 없는 형편임을 알고 아예 연락조차 하지 않았단다. 남자는 지극 정성을 다해 여자를 돌보았다. 그럼에도 회복이 안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고 여자는 남자의 곡진한 정성에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 마지막 숨을 가누고 있었다. 남자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는 생각에 가슴속 깊이 묻어둔 말을 꺼냈다. “내 마음을 아시겠어요?” “예... 알아요. 고마워요.” 두 사람은 평생 하지 못한 말을 나누었다. 말은 짧았어도 천금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여자는 남자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남자는 여자가 떠난 뒤에도 가슴속 깊이 잔물결을 일으키는 사랑의 파동을 품고 살았다. 그 뿌리에 측은지심은 없었다. 만남이 짧다고 잊히는 것도 아니고, 애틋한 추억이 없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라고 한 영국의 철인 데이비드 흄의 말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사랑에 유효기간이란 있는 걸까? 젊어서는 사랑으로 살고 늙어서는 정으로 산다거나, 정주고 살다가 나중에는 측은지심으로 산다는 말은 맞는 말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말 같다. 우리는 사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daumcafe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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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1
  • 남자가 남긴 토막말
    “어이” “이봐” “여기” 결혼을 앞둔 여자가 남자에게 한 가지 꼭 지켜줄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이런 식으로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될 막말이라면서. 그동안 남자가 아내를 부르는 수많은 입을 보았는데 가장 혐오스럽고 비인격적인 호칭이라고 했습니다. ‘부부관계를 지키는 마지노 선’이라며 처음부터 금을 딱 긋고, 대신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어요. 가장 가까운 남편으로부터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싶다는 것이 여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부부관계를 말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겠느냐며 자존감 지닌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약속대로 남자는 결혼 30년이 지날 때까지 그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 살다 보면 화가 치솟고 감정이 욱할 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남자는 말로 여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시댁 어른들 앞에서도 매번 이름 뒤에 ‘씨’를 붙였고 존댓말을 썼어요. 당시로는 흔치 않은 말법입니다. 그러던 남자가 딱 한 번 실수를 범하고 만 건, IMF 환란 때 사업이 부도에 몰리는 긴박한 상황에서였죠. 이 고비만 넘기면 회생이 가능할 텐데, 처가가 끝까지 외면하고 보증을 피하자 한 순간 감정이 폭발하며 나온 소리입니다. 거친 막말이 나오더니 아내를 밀쳐 넘어지게 했습니다. 한 순간 넋이 나간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주어 담으려 했지만 이미 쏟은 물이었지요. 그날이 하필 아내 생일과 겹쳤습니다. 잊었다가도 해마다 그날이 오면 생각나는 아픈 기억…. 남자 마음이 편할 리 없습니다. 계절이 찾아오듯 때만 되면 회한으로 떠오르는 토막말. 딱지가 앉기도 전에 다시 생채기를 내는 일이 반복됩니다. 사업한다는 남자한테 딸을 주고 싶지 않다던 장인어른의 말도 떠오릅니다. 말이 좋아 사업가지 호강은커녕 늘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마음고생을 시켰고, 급전이 필요할 때면 처가로, 친구로, 돈 심부름도 다녔습니다. 생각은 심연에 가라앉은 부끄러움까지 휘저어 올리죠.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뜰히 살펴 준 것도 없는데, 내색 없이 살림에 충실해준 아내가 고맙고, 알아서 잘 커서 스스로 짝을 만나 제 앞길을 찾아간 두 아들 딸이 대견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결혼 45주년이 되던 그해 봄. 부부는 딸이 결혼기념일이라고 마련해준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느 날처럼 집에 돌아와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 날이 돼버렸습니다. 새벽녘, 잠을 자던 남자가 흉통을 호소하며 온몸이 땀에 젖을 때,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협심증을 앓아온 남자는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남자의 명줄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창졸간에 삼일장이 치러졌습니다. 삼우제를 마친 아내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책상 서랍 안쪽 밑에 깔려 있는 흰 봉투 하나를 찾았어요. 죽음을 예견한 걸까. 꼼꼼한 남편이 미리 써둔 유서였어요. 남자의 체온이 실린 육필은 첫 문장을 참회로 시작했습니다. “효은 씨.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합니다. 그것도 당신 생일에, 홧김에 쏟은 해서는 안 될 나의 막말에 용서를 구합니다. 평생 후회로 안고 살았습니다...” 두 번째 단락에는 어려서 죽은 큰 아들의 회한을 담았습니다. 네 살배기 아들 준이를 폐렴으로 잃고 한강에 나가 가루를 뿌리던 날, 그 밤의 아픈 기억을 말했습니다. 그 후로 한강 근처를 나가지 못하고 시린 가슴으로 몇 년을 방황할 때, 나를 보고 모두가 잊으라고 했었지요, 자식은 가슴에 묻고 그만 잊으라 했을 때... 당신만은 내게 그러지 않았습니다. “잊으려고 애쓰지 말아요. 그건 너무 가혹해요. 그다음 생기는 빈 공간은 어쩌려고요. 그 무엇도 대신해 채울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 죽을 때까지 옹이처럼 가슴에 박고 잊지 말자고 했습니다. 상처는 보듬고 싸매야지 뜯어내면 덧나게 마련이고, 시련은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라고 나를 다독일 때, 캄캄한 밤바다에서 한 점 빛으로 흔들리는 등대를 보는 심정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시련은 운명이고, 운명은 떨치고 이겨낼 때 소망이 생긴다는 사실을. 의사가 말했지만 차마 당신에겐 전하지 못하고 당신 옆에서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이젠 내가 당신께 당부할 차례입니다. 효은 씨, 끝이 정해진 책처럼 내 생의 길이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별의 아픔이 크겠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삶의 시선을 꼿꼿하게 지켜주길 원해요. 앞서 가서 자리 잡고 그날의 당신을 기다리렵니다 용서해줘 감사하고, 사랑해줘 고맙고, 먼저 떠나 미안해요... -소설가/ daumcafe/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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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7

실시간 기고 기사

  • 섣달그믐의 발자국
    설을 앞두고 부모님 산소를 찾아 고향에 갔었다. 고향에는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시장 한켠에 여전히 문을 열고 있는 목욕탕이 있었다. 예전엔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띤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낡고 옹색하기가 그지없었다. 나는 목욕탕 길 건너의 음식점 창가에 앉아 한동안 스치는 상념에 잠겼었다. 슬프게도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가보질 못했다. 아버지는 외아들인 나를 데리고 저 목욕탕에 가지 않으셨다 단 한 번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일곱 살이 넘도록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에 들어가곤 했다. 나는 어머니가 미리 알려준 대로 누가 물으면 손을 펴보며 다섯 살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눙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욕탕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 앞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으쩜 애가 이리 크노, 몇 쌀? 여덜?" 내 눈을 빤히 보며 묻는 할머니에게 당황한 나는 입속에 준비된 다섯 살을 깜빡하고 일곱 살이란 말을 툭 내뱉고 말았다. 그 바람에 어머니가 대신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한 번은 짓궂은 아주머니가 내 앞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요놈 고추보레 실하게도 여물었네 아이고 야" 하곤 내 고추를 툭 건드릴 때는 가뜩이나 더운 목욕탕 열기까지 더해 얼굴이 발개졌다. 골이 잔뜩 난 얼굴로 식식거리며 텀벙 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목욕탕..... 나이가 더 들자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는 처음 나를 혼자 남탕에 들여보냈다. 그때 나는 남자가 되었다는 기분에 우쭐 했고,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여간 홀가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혼자 등을 밀어야했다.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어서였다. 부자가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아버지와 아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렇게 명절이 가까워지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띠었다. 때로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는 목욕비를 아끼려고 목욕탕에 가시지 않는다고 내 멋대로 아버지를 비난했다. 그러다 등짝에 살이 숯덩이처럼 검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것은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 후의 일이었다. . 아들이 밀어드리고 싶었던 아버지의 등, 들어내기 싫어서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당신의 등이 그곳에 있었다. 해가 지면 달을 지고, 달이 지면 해를 등에 지고, 한없이 걸어갔을 길. 그래서 봄날은 간다는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신 걸까 그 길의 끄트머리는 적막강산 같은 등짝에 화인처럼 찍혀 있는 지게자국.... 그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입원실 욕탕에서 내 등에 업혀 욕수에 몸을 누일 때까지. 내가 아버지의 몸을 씻길 때, 마침내 아버지는 아들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셨다. 호랑이의 발자국처럼 선명하게 남은 아버지의 흔적.... 눈발도 흩날리지 않았던 밤, 윙윙대는 바람소리만 길에 가득 차오르던 밤, 섣달그믐 날의 일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저벅저벅 눈길을 밟고 오는 발자국소리.... 올해도 창가에 귀를 대며 읊조린다. 오소서 아버지... (이관순 / 소설가ㆍ전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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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2
  • 고통의 순간 神은 어디있는가
    ?... 실존의 문제를 무겁게 안긴 <침묵(沈?)> 이 고통의 순간에 신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나 한 번쯤은 ‘신(神)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져봤을 것이다. 사회윤리가 뒤틀리고 불의가 갈수록 창궐하는 지금, 그 물음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동안 인문과목으로 만나온 분들에게 “한 번은 신과 인간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치열하게 사색해 보자.”고 권했다. 그리고 텍스트로 책 한 권을 소개하기도 했다. 막부시대의 가톨릭 박해사건을 소재로 다룬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沈?)’(1982. 홍성사)이다. 내게는 어떤 신학 서적보다도 더 절실하게 실존의 무게를 안겨준 책이다. 작가 엔도 슈사쿠(1923-1996)는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침묵’ 때문에 역작용을 부르기도 했다. ?... 일본 선교의 참화가 시작되었다 기독교의 일본 선교는 16세기에 시작될 만큼 우리나라보다 크게 앞섰다. 1614년 도쿠가와 막부(幕府)가 금교령을 실시하자 일본 땅은 삽시에 얼어붙었다. 나가사키에서 26명의 사제와 신도가 화형으로 처형됨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고문 받고 학살을 당했다. ‘침묵’은 이 광란의 시기에 나가사키 북쪽의 바닷가 마을 소토메(外海)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일본 관헌들은 숨은 신도들을 가려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마침내는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그려진 성화(예수와 마리아 상)를 땅바닥에 던져놓고,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한 사람씩 밟고 지나갈 것을 강압한다. 잔인한 감별법이었다. 성화를 밟고 지나가면 배교(背敎)로 생명을 건지고, 밟기를 거부하면 기독교도로 잔혹하게 처형한다.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생사의 선택을 해야 했다. ?... “예수를 밟고 배교(背敎)하라.” 갈림길에 선 신부 ‘침묵’은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됐다가 붙잡힌 젊은 신부 로드리고의 고뇌를 좇고 있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이 성화를 밟은 상태에서 일본 관리는 신부에게 제안을 한다. “예수의 얼굴을 밟아라. 밟고 배교하면 저 사람들을 살려 줄 것이다.” 이로부터 포교를 위해 이역만리를 건너온 신부의 눈물겨운 고뇌의 과정이 그려진다. 위기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응답을 구하지만 신의 침묵은 계속될 뿐, 바다조차 어두운 침묵을 깔고 잠잠했다. 신부의 배교를 강요하면서 신도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관리들... 배교와 순교의 갈림길에 선 그는 인간의 진실과 신앙의 진리, 그 어느 것도 쉽게 저버릴 수가 없었다. “하나님 왜 당신은 계속 침묵하시는 겁니까?“ 이 작품은 로드리고 신부의 처절한 물음 속에 신앙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믿음을 지키고자 끝까지 성화 밟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당할 것인가. 비굴해지더라도 성화를 밟고 생명들을 건질 것인가. 과연 어느 것이 참된 사랑의 행위인가. 순교라는 미명아래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는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통렬한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이관순 / 소설가ㆍ전기작가) ?... 내가 고통 받을 때 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작장을 따라 새 임지로 이주했다가 예배처가 없다고 교회를 개척한 어머니의 훈교를 받으며 반듯한 기독 학생으로 자라야 했다. 어머니는 내게 굳건한 믿음을 지니길 바라셨지만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신과 나 자신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였다. 1980년대 온 나라가 격동의 쓰나미에 휩싸일 때 책방에서 우연히 ‘침묵’을 발견했다. ‘침묵’은 부닥친 현실과 교회가 요구하는 신앙인상(像)의 간극으로 갈등하던 나를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기독교 선교사(史)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로 신앙의 절개를 지킨 영웅들의 이야기가 절절하다. 이에 비해 ‘침묵’은 한 신부를 통해 변절과 실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내가 고통 받을 때 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신부의 물음은 당시 내가 겪고 있는 신앙의 딜레마와도 상응했다. 소설은 성직자로서 따라야 할 교리와 인간의 도리 사이에서 고뇌하던 신부가 마침내 성화를 밟기 위해 발을 들며 절정을 향한다. 그리고 발을 내리려는 순간, 침묵하던 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장면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또렷한 기억으로 살아 있다. ?... 나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 태어났다.... 로드리고 신부의 귀에 바람처럼 흔들려온 그리스도의 음성...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알고 있다.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오고, 멀리서 닭이 울었다. 책장을 덮자 그 장면이 환영처럼 펼쳐졌다. 사방에서 헨델의 ‘메시아’가 울려 퍼지는 듯했고, 그 중앙에 내가 선 기분이었다. 엊그제, 서재의 한곳에 묻혀 있던 ‘침묵’을 꺼내 다시금 읽기 시작했다. “로마 교황청에 하나의 보고가 들어왔다. 포르투갈의 예수회가 일본에 파견한 한 신부가 나가사키에서 고문을 받고 배교를 맹세했다는 것이다...” ‘침묵’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시금 ‘침묵’을 읽으며 가슴에 여울지는 물소리를 듣는다. 나를 밟아라. 밟는 네 발의 아픔도 나는 안다.... 최후의 순간에 깨닫는 하나님의 사랑과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 굳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감명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주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지만, 우주와의 관계로까지 질문은 확장성을 지닌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던지는 질문일 테니까. ‘침묵’을 통해 믿음이란 단순한 맹종이 아니라, 넓게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따뜻한 인종(忍從)과 순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의 고뇌와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사순절이 지나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참된 사랑의 행위인가. 순교라는 미명아래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는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통렬한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이관순 / 소설가ㆍ전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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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1
  • 밀란 쿤데라의 ‘느림’의 미학
    5G시대가 열렸다고 환호한다. 초고속, 초대용량 통신이 가능해져 영화 한 편 내려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0.8초. 그 속도감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오지 않는다. 인간의 초능력이 과학이란 날개를 달고 끝 모를 하늘로 날아오르는 걸 보면서, 신과 인간의 영역이 모호해 진다는 생각에 덜컥 불안해 지기도 한다. 나이가 드니 세월이 빠름빠름 이상으로 지나간다. 여기에 세상까지 ‘빠릿빠릿(빠르게)’을 재촉하니 생각이나 발걸음은 더욱 느려터지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시대의 아이콘인 ‘빠름’과 ‘편리성’이 우리네 삶을 마냥 행복하게 해줄까? 인생을 살고나면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들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사소한 순간은 일상의 미세한 진동에서 생기는데, 인생을 광속으로 달리기 하다가 세밀한 즐거움을 다 놓치는 것은 아닌지.... 좀은 천천히 돌아보고 좀은 불편하게 살더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과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고 사는 게 보다 인간을 관조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졌는가 고즈넉한 저녁, 파리 근교의 고성을 향해 아내와 함께 한적한 길을 차 몰고 달린다. 순간 뒤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며 젊은 남녀가 차를 몰아 쏜살같이 추월해 달려간다. 그걸 보며 화자(話者)는 생각한다. 저 연인들은 이 아름다운 저녁을 감상하며 사랑의 밀어를 나눌 생각은 않고 어째 저렇게 달리는 충동에만 사로잡혀 있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인 밀란 쿤테라는 그의 소설 <느림(La Lenteur)>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아쉬워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그 옛날의 그 한량들은- ” 그의 작품은 늘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인간 존재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던져주고 있다. 이 소설과는 IMF 늪에 빠진 한국호의 뱃머리에서 처음 만난 후, 세상이 성난 사자처럼 달려가는 21세기 한 구석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쿤데라가 던지는 화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ž告? 작중 화자인 ‘나’(쿤데라일 것이다)가 아내 베라와 함께 호텔로 개조한 프랑스의 한 성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소설을 구상한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인 이 작품에서 쿤데라는 희화의 날을 세우고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느리고 한가로운 관조와 여유가 사라져버린 오늘날의 현실을 특유의 가벼움과 철학적 유머로 느릿느릿 끌질을 쉬지 않는다. 그는 느림의 한가로움은 게으른 빈둥거림과 다르며, 그것은 마치 신의 창(窓) 들을 관조하는 행복이라고 동의를 요구하기도 한다. ???? 느림은 기억이고 빠름은 망각이다 다시금 관조하게 되는 말... 그렇다. ‘느림이란 기억이고, 빠름이란 망각’이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구상할 때 발걸음은 느려지고, 모든 것을 잊고 싶어 할 때 발걸음은 빨라지는 법이다. 우리의 발걸음은 슬프게도 계속 빨라지고 있다. 냄새나는 퇴적물을 쏟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모락모락 이는 자괴감은 툭하면 뛰자고 했던 우리의 자화상이다. ‘빨리빨리’를 최고의 가치로 숭앙한 우리... 다시금 쿤데라의 ‘느림의 철학’을 생각한다. 속도를 늦추고 달려온 자리를 뒤돌아보며 무엇이 잘못됐는지, 고칠 것은 고치고 다시 나갈 길을 곰곰 따져볼 때가 아닌지. 작품을 통해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는 말은 너남 없이 속도에만 몰입하고 있는 살맛 없는 이 세상에 대한 탄식과 비판을 담고 있다. 작품 속의 춤꾼의 비유도, 오직 대중적인 인기에만 연연하는 광대 인생들에 대한 신랄한 비꼼이며, 욕망에 대한 인간들의 집착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다. 희극과 비극이 뒤엉킨 인간의 운명을 특유의 유머가 밴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는 쿤데라의 매력은 <느림>에 이어 국내에 소개된 소설 <정체성>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외친다. “어느 날 그 여인이 변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달라진 것인가 아니면 나의 시선이 변한 것인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에 이어 <정체성>, <농담>에서 그가 던지는 또 하나의 번뜩이는 비수.... 그는 도대체 삶의 비밀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순금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천지에 피를 돌게 하고, 아침마다 낯을 씻는 연한 풀잎들은 더욱 옷깃을 여밀 터인 데, 그리하여 나무들은 그 잎새들을 키워 바람마다 노래를 잉태케 할 터인데..... <느림>의 체온으로 이 봄의 순결을 찾아 떠나고 싶다. 열차가 발정 난 멧돼지처럼 삽시에 지나간 간이역에는 지금 무슨 꽃이 피어 있을까(*). (이관순 / 소설가ㆍ전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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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8
  • 현대인이 앓는 ‘속도의 병(病)’
    ???? 생각의 영역까지 불붙은 속도전 세상이 참 빨라졌다. 철들면서 한없이 들어온 얘기도 세월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세월이 뛰어가는 말을 문풍지 구멍으로 보는 것 같다’고 노래했을까. 이젠 세상이 빠른 것과 세월이 빠른 것은 완전 다른 개념이다. 세월이 변함없는 우주질서의 영역이라면, 세상은 변화무쌍한 과학기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속도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속도’라는 단어가 붙는 영역은 모두 속도전에 휩싸였다. 인터넷, 자동차, 충전, 배달... 지금은 생각의 영역까지 불이 붙었다. 이 속도전은 언제라야 끝나고, 우리 삶을 만족시킬까. 생각의 과속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일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생각은 속도의 영역이 아니라,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다. 그래서 생각에는 깊이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생각의 근력을 키워 천천히, 오래, 깊이 있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서 내게 묻는다. 지금 몇 달, 몇 년째 집중하는 생각이 하나라도 있냐고. 세상에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느리게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게 인생이다. 고은의 시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현각 스님의 수행서인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생각의 폭주를 경계하고 있다. 인생은 한 곳에 내려 후딱 사진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사진 찍는 단체 관광 상품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 느리게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것들 한 때 틴틴 파이브로 이름을 알렸던 개그맨 이동우가 망막색조변성증으로 시력을 잃게 됐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태도와 밝은 생활로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순간순간 밀려오는 고통의 시간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어느 날, 기적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놀랍게도 자신의 망막을 기증하겠다는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온몸이 굳어져가는 루게릭병 환자 임재신이었다. 다큐멘터리영화 그대 있음에)>는 앞을 못 보는 남자와 움직이지 못하는 남자가 함께 한 제주 여행기다. 볼 수 있는 남자는 자신이 본 풍경들을 쉬지 않고 보지 못하는 남자에게 전했다. 그는 열심히 제주의 바다풍경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이 휠체어를 밀어서 바다에 빠뜨려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루게릭 확진 후 1년쯤은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단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데 있었다. 죽는 것조차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조용히 듣고 있던 앞 못 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세상의 모든 빛과 풍경이 어둠에 잠기면서 느끼게 된 세상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어둠 끝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을 얘기했다. 내 손가락 끝에 새로운 눈이 생겨나고, 또 바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얻기까지... 볼록렌즈처럼 온몸의 감각과 촉수, 생각을 몽땅 빨아들인 후 열려진 세상에 대해 말했다. “보는 것보다 듣는 게 훨씬 더 본질에 가깝다고 느꼈어. 어쩌면 눈이 보는 건 껍데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하고 들으면서 활달하게 웃었다. 아프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만, 그렇다고 이만큼 아프게 사는 사람도 흔치 않다. <시소>란 다큐멘터리 영화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이들의 눈물이 아닌 웃음이었다. 기쁨과 감사에 시선을 모으는 그 환한 웃음이 봄꽃처럼 해맑았다. “바닷가에서는 파도가 설교를 하고 목사는 듣는다.”는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인생은 누구나 누구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나게 해서다. 세상엔 위대한 삶도 시시한 삶도 없다. 다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인생길을 가는 사람과 쫓기듯 달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생사봉도(生死逢道), 삶과 죽음은 언제나 길 위에 함께 있다. 지금 이 순간을 깊이 있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듯하다. (이관순 / 소설가ㆍ전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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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4
  • 우리가 만들고 무너뜨린 ‘IMF 괴물’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IMF국란의 시기로 시계를 돌려보자. 1997년 11월 21일. 역사는 OECD가입이란 장밋빛 환상에 젖던 대한민국이 IMF 앞에 알몸을 드러낸 수치의 날로 기억한다. 모진 수모를 겪으며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은 눈물보다도 절망이었다. 은행과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재계는 빅딜과 워크아웃 태풍에 휘청거렸다. 실직으로 거리에 내몰린 이웃들로 가정의 울타리는 속절없이 해체되었다. 그리고 늘어나는 노숙자들. 그즈음, 대량 실직사태를 빚은 제일은행 본점에서는 ‘남편 기 살리기’ 행사가 열렸다. 곱게 화장을 한 수백 명의 중년 여인이 자리를 채웠다. 아픔을 같이한 부인들을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저마다 사연을 담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가 읽히고, 내부에서 제작한 <내일을 준비하며>란 영상을 틀 때 탄식이 흘러나왔다. 남편의 고단한 하루 일과를 시간 단위로 좇는 카메라와 낮고 무거운 톤으로 깔리는 내레이션.... 달그락, 톡 톡..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드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한 행원의 자작시가 낭송되자 치받는 슬픔이 목울대를 흔들고 숨죽여 흐느끼는 부인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이 침묵의 땅에서 /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의 풍경은 모두 낯설기만 합니다 / 날마다 얼굴 마주하던 사람, 사람들 손때 묻은 책상, 펜과 서류뭉치 / 한 몸이던 단말기 그리고 해보다 눈부시던 우리들의 미소까지 / 이 모두를 하늘에 걸어두고 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 이 마술에서 깨어나야 희망이 있다 2001년 8월 23일. 연표(年表)는 IMF차입금을 완전 상환한 날로 기록했다. 우리는 3년 만에 스스로 키우고 만들었던 ‘IMF 괴물’을 자력으로 무너뜨렸다. 수치를 자긍으로 바꿔놓은 역사였고, 우리 현대사의 이정표를 밝힌 불꽃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눈물이 어떻게 스스로를 단련시키는지 배웠다. 부드러운 흙과 새로 돋는 떡잎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더 크고 밝은 세상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뿌리 깊고 튼실한 나무를 키우려면 어떤 거름을 줘야하는지도 깨우쳤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곳곳에서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그때의 배움은, 그 많던 IMF교훈은 다 어디로 갔나? 오늘을 사는 우리의 어깨를 한 없이 쪼그라들게 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언제까지 미궁에 빠져있을 것인가. 그러고도 글로벌 4차 산업혁명시대를 주도할 수 있을까?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린 여기까지다. 날개가 녹아내린 이카루스는 검푸른 바다로 추락할 것이고, 상전벽해의 세상을 만든 초능력의 마법 마술도 더 이상 빛을 잃고 어둠에 잠길지 모른다. IMF난국을 극복할 때처럼, 마법을 풀고 각기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자 대한민국의 기본인 자유, 민주, 시장 앞으로. 그러한 절박감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이관순 / 소설가ㆍ전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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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1
  • 아, 대한민국의 이카루스
    글로벌 5G 상용화로 4차 산업혁명의 불꽃 튀는 경쟁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인간의 초능력이 만드는 세상은 뼛속까지 마법의 시대다. 그 DNA가 만드는 마술은 현란하다 못해 많은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한다. 주술에 걸린 사람은 걸린 대로, 쳐진 사람은 그들대로 변화에 적응하고자 안간힘을 써야 사는 세상이 되었다. 마법의 진화는 끝 모를 고도를 향해 솟아오르고 있다. 자고나면 벼락치듯 찾아오는 손님들.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에 5G까지... 양지가 커지면 음지를 키우듯, 어두운 신문맹의 그늘도 함께 깊어진다. 덩달아 눈 뜬 청맹과니가 양산되고 있다. 고령사회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 모든 마법과 마술을 인간생활의 편의성 증대로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여기서 인간이 부리는 마법이 인류의 축복일까 불행일까 하는 점은 또 다른 의문이다. 미래 탐험이란 끝 모를 과학의 호기심이 ‘Black Swan’(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함께 키운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류는 신과 사람의 영역과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 마법은 언제까지 통할까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에 서면 혼란은 더 가중된다. 세종로와 종로의 교차점이기도 한 이곳은 우리나라 모든 길의 시발점으로 도로 원표가 있는 곳이다. 또한 경복궁 뒤로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빼어난 경치를 품은 곳이다. 하지만 아스팔트 위로 눈을 내리면 또 다른 마법의 세계가 펼쳐진다. 한편에선 미래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초능력 개발에 명운을 거는데, 길의 심장인 광장에는 과거에 발을 묶은 사람들로 와글와글하다. 친문(親文), 반문(反文)으로 갈라져 싸움판을 키우는 기이한 형국이 연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앞에서 건국 70년은, 100년은 무슨 의미일까? 아직도 나라의 생일조차 모르는 나라... 쌓으면 부수고, 지으면 허물기를 반복하는 임시건물 앞에서 가슴에 차오르는 건 비감함뿐이다. 자갈밭의 빈 수레처럼 나라가 비틀거리고 있다. 고용 ? 외교 ? 인사 ? 자영업 참사시대를 부르고, 덧대어 동맹균열, 적폐청산, 왕따, 신(新)내로남불 같은 신물만 올리고 있다. 마지막 민생 경제에 이르면 정부는 무능과 위선으로 내몰려 뼈아픈 끌질을 당한다. 언제라야 많은 사람들이 쪽잠을 풀고 온전한 잠을 청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고 눈비가 와도 여전히 뜨거운 공론의 광장을 휘젓는 이 마법은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이 주술은 언제가야 풀릴까? 대한민국의 이카루스는 추락하고 있다. 왜 태극기는 성조기처럼 휘날리지 못하고, 이역만리에서도 눈물짓게 한 애국가가 왜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국기(國旗)도, 국가(愛國歌)도, 나라 생일도 국민적 보편성을 부정한 광장은 오직 저들의 날갯짓에만 관심을 쏟는다. 더 높이, 더 빨리 날기에 익숙한 우리의 이카루스. 밀랍 날개를 달아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무시한 채 빛의 황홀함에 빠져 퍼덕이는 날개를 접을 줄 모른다. 누구는 이를 ‘추락’이라 하고, 혹자는 ‘비상(飛翔)’이라 한다. 하지만 힘에 부친 날개는 이미 태양의 열기에 녹기 시작했다. 추락만은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관순 (소설가 전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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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7
  • 잊힌 전쟁, 잊힌 영웅들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참혹한 기억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잊는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으니까. 7년 전쟁을 끝낸 일본이 전후사 연구에 몰입할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고 조선에도 반성하는 사람이 있다며 놀라워했다는 얘기가 우리를 슬프게 했다. <6·25 전쟁 73주년>. 이념의 덮개는 여전하고 무심한 세월만 덧씌워졌다. 폐허 위에 자유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 대국으로 나가는 발판을 제공한 전쟁이, 우리의 기억에서 멀리 도망가 있다. 잊힌 전쟁, 잊힌 승리, 잊힌 영웅들로.... 6·25 40주년이던 1990년, 서울시청 정문 위로 한 장의 대형 흑백사진이 걸렸다. 6·25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진이었다. 전쟁으로 부모 형제를 잃은 소년이 길을 헤매다가 덕수궁 우물가에 잠든 것을 외신기자가 찍어 라이프 지(誌)에 실었던 ‘우물가 소년’이다. 이후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를 추적한 조선일보가 그해 6월 25일 자에 “전쟁고아 ‘우물가 소년’ 하버드 박사 돼 40년 만에 돌아왔다”는 제목의 기사와 사진을 톱으로 올려놓았다. 임종덕(J. 화이트)씨. 고아 인생을 화려하게 반전시키고, 40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의 첫 말은 “6·25를 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때의 참상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래전 그분의 육성 증언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공무원이었던 소년의 아버지는 전쟁이 터지자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고 숨었다. 악착같은 인민군이 집안을 샅샅이 뒤져 아버지를 인민재판에 끌어냈다. 그들은 마당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총살하고, 형제들이 감금된 안방에 불을 질렀다. 이 광경을 14세 어린 소년은 나무 위에서 숨이 멎은 채 지켜봐야 했다. 외신기자는 오갈 데 없는 소년을 데리고 전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1·4 후퇴로 전세가 뒤바뀌면서 전선을 취재하던 외신기자는 전사하고, 소년은 가까스로 살아나 서울의 한 고아원에 맡겨졌다. 소년은 불광동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원장의 비리를 수없이 목격했다. 원생들은 시래기죽도 못 먹는데 그들은 쌀밥을 먹고, 그뿐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이 원생들에게 나누어준 옷이며 신발이며 구호품까지 그들이 떠나기 무섭게 몽땅 회수해 팔아먹었다. 그때마다 트럭이 들락거렸다. 아이들은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고아원 총무의 서슬 퍼런 눈빛에 질려 입을 열지 못했다. 참다못한 소년이 당찬 결심을 했다. 쫓겨나면 그뿐, 어디 가면 못 살까. 아이들을 집합시킨 후 당돌하게 외쳤다. “우리 나가자. 나를 따라올 사람은 다 나오라.” 그 한마디에 82명이 따라나섰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호응하자 당황스러웠다. 이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딜 가지? 두려운 생각이 교차하는 동안 발걸음은 어느새 무악재를 넘어 서울역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남산 곳곳에 파놓은 방공호 자리를 아지트로 만들고, 다음날부터 서울역 부근 염천동 일대의 미군 쓰레기장을 뒤져 돈 될 것을 찾았다. 깡통 하나씩 옆구리에 차고서. 그러나 적자생존의 법칙은 이 바닥에도 있었다. 힘센 형들이 아이들의 것을 빼앗고 괴롭히자 소년은 대항할 조직을 만들었다. 싸울 때 대오와 공격 요령을 가르치고 남대문, 도동, 양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세 싸움을 벌였다. 소년은 맹렬하고 독했다. 금방 소문이 나면서 마침내 이 일대 양아치의 두목이 되었다. 별칭 ‘빨강 셔츠’. 그가 빨강 셔츠를 입고 나가면 아이들이 달려와 머리를 숙였다. 경찰들도 그를 알고 있지만 남을 괴롭히지는 않았으므로 단속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한 얘들이 고열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둘러업고 달려가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양아치라며 모두 문을 닫아걸었다. 하루사이 32명의 아이가 홍역으로 죽어나갔다. 시신을 그러 묻으며 소년은 돈독이 올랐다. 동생들이 죽은 건 모두 돈 때문이라며. 그런 소년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하루는 서울역 앞에 미군 세단이 서고, 별을 단 미군 장군이 내리는데, 소년의 눈에 비친 건 뒷좌석에 놓인 가죽가방이었다. 직감에 ‘돈’이라 판단하고 모든 시선이 장군에게 쏠릴 때 순식간에 가방을 빼돌려 양동 골목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가방 안에는 접힌 지도 한 장뿐이었다. 실망한 나머지 지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죽가방만 챙겨 남대문시장에다 팔고 나오는데. 낯익은 형사들이 그를 덮쳤다. “네 놈 짓이지? 어딨어? 공군사령관 가방!” 가방에 비밀지도가 들었다며 방방 뛰는 형사에 붙들려 서울역으로 끌려왔다. 경찰과 헌병이 쫙 깔렸고, 동생들 수십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소년은 ‘아이엠소리, 베리소리, 이리 오케이, 저리 오케이’를 연발하며 형사들을 안내해 쓰레기통에 버린 지도를 찾아주었다. 그런 소동을 벌인 소년에게 찾아온 건 벌 대신 사랑이었다. 미공군사령관 화이트 장군이 지도를 돌려받은 고마움으로 사령관 가방보이로 채용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 중인 아들이 전사하자 소년을 아예 양아들로 입양시켰다. 1952년 8월 그의 미국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타고난 영민함과 명석한 두뇌를 지닌 그는 양부모의 후원아래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육군 대령으로 전역하기까지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미군의 주요 보직을 수행했다. 한국을 찾으며 그가 말했다. “하버드 대에서 하루 3시간 자며 공부할 때나, 군에 복무할 때도 6·25의 아픔과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라고. 우물가 소년의 '비극과 승리'는 우리의 스토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산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켜지고, 융성해졌는지를 까맣게…. 올해는 <6·25 전쟁 정전 70주년>의 해다. 정부는 5만여 참전 용사들에게 명예 제복인 ‘영웅의 제복’을 만들어 선물했다. 그동안 참전 용사들이 조끼를 입고 다녔는데 일부에서 비하되는 것을 보고 헌신한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자는 뜻으로 준비했단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잘한 일이다. 제복을 받은 구순(九旬)의 용사들은 “나라에서 우릴 잊지 않아 감사하다.” “눈 감을 때 수의 대신 입고 싶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참전 용사들은 영웅의 제복을 입고 오늘 6.25 기념식에 참석했다. 6.25 전쟁은 잊힌 전쟁이 돼서도 안 되지만 영웅들을 잊어서도 안 된다. 역사는 우리에게 그 점을 묻는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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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4
  • 너무나 통속적인 생로병사
    주변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에 소슬한 바람이 일었다. 늙어서나 병 들어서나 산자와 사자 사이를 가르는 건 벼락 치듯 한순간에 찾아온다. 그 찰나에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 사이로 금이 생긴다.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기는 순간의 빛과 어둠처럼. 그 앞에 생로병사는 더 이상 그 흔한 통속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때로는 비통하고 때로는 먹먹하고 쓰디쓴 리얼한 현실의 아픔이었다. 제철 음식인 민어 매운탕을 먹자고 몇몇 친구들과 식당에서 어울렸다. 다들 잊히는 것이 많아졌다고 멀어져가는 세월을 야속해 했다. 반세기 동안 즐겨 마신 원두커피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50년 넘게 읽어온 성경 속 인물 이름이 가물거릴 때가 많아졌다. 핸드폰을 열고는 왜 열었는지 쓴웃음 짓는 것도 야속하지만, 외출하다 잊은 게 생각나 집으로 돌아왔는데 현관 앞에서 왜 왔지? 그처럼 어색한 연기도 없을 것이다. 후각에 문제가 생긴 친구는 가장 좋아한 된장국 끓는 냄새를 못 맡는 게 슬프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것은 늘 따로 있었다. 뜬금없이 생각나기도 하고, 꿀꺽 삼켰는데도 꾸역꾸역 넘어오는 것들. 부끄러운 기억들이었다. 추억이란 원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법인데 도리어 얼굴을 붉히게 하는 기억들이 있다. 은사님 집에서 못하는 술을 홀짝홀짝 받아먹다가 통금시간에 걸려 일박을 청한 것까진 좋은데, 손님이라고 사모님이 깔아준 새 침구에 토설을 하고…. 위기에 처한 아들 사업을 지키려고 친구에게 돈 좀 융통하려다 면박을 당하고…. 약혼을 앞둔 여자가 백혈병이란 진단에 슬그머니 그녀 곁을 떠나버린 일…. 하나같이 도망치고 싶은 기억들을 얘기했다. 다른 건 잘도 잊으면서 부끄러운 기억은 화석처럼 선연했다. 사람들은 유의미한 것만 생각하려 들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치고 무의미한 존재가 있을까. 누구는 누군가의 무엇이고 무엇은 또다른 무엇과 엮이는 세상에서. 짧은 손편지에도 우주와 세계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구상의 모든 언어들은 생로병사라는 통속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기품 있고 고상하게 포장을 하지만 나이가 깊어지며 알게 되었다. 생로병사처럼 통속적인 소설도 없다는 것을. 눈이 녹으면 드러나는 산능선 같이, 때로는 통속성을 지닌 것이 더 또렷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결혼하고 아홉 번 이사를 했다. 이삿짐을 쌀 때마다 섣불리 버리지 말자를 원칙으로 삼았다. 뒤늦게 찾거나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챙기는 것보다 버리는 것에 신경을 쓰는 나를 보았다. 그 점에서 아내도 비슷했다. 아내는 철 지난 옷이나 그릇, 낡은 가재도구를 내놓고, 나는 책을 골라내고 언제 산 건지 기억에도 없는 물건들을 걸러냈다. 그러면서 앞으로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말자. 적어도 다섯 번은 생각한 후 사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다짐이 쓸모없다는 건 몇 년 뒤 이사 갈 때 확인되었다. 또다시 비슷한 양의 쓰레기를 만들어 놓은 걸 발견하니까. 그것도 내 얼굴을 붉히는 부끄러움 중 하나였다. 그때는 분명 필요하다고 사들였을 텐데, 결국은 자신의 이미지 소모에 덧칠임을 몰랐다. 살면서 그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통속적인 호기심에 이끌렸다. 엊그제 친구가 고열로 실려간 병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 감염환자로 아버지를 격리 치료실로 들여보낸 친구의 외동딸이 전화를 한 것이다. 병원에 들어선 나를 큰아버지라 부를 만큼 평생을 같이한 가족 같은 친구 딸이었다. 젊은 나이에 아내를 일찍 앞세운 친구는 비혼의 딸을 의지하고 산 지 십 년이 다 됐다. “최선의 의학 처치를 다했다고 해요. 지금으로서는 심정지가 발생할 확률이 높으니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됐다고 해서...” 딸은 말끝을 잇지 못했다. 맥이 빠르고 호흡이 거칠어 산소를 투여해도 산소 포화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고 힘든 상황을 전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흉부 CT 상에도 바이러스가 양쪽 폐를 모두 점령했다면서 고령이라 연명치료는 권해드리고 싶지 않다고. 가족분들이 의견을 모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가족이란 없는 딸이 아버지 같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말 대신 딸의 어깨를 보듬었다. “심폐소생술은 받지 않으려고요. 아빠를 편히 보내드리고 싶어요.” “그래. 내게도 그런 말을 하셨다.” 창너머로 임종을 앞둔 친구를 바라보았다. 삶과 죽음 사이의 아득한 거리가 가슴 저리게 느껴졌다. 스테이션에서 보호자에게 전화로 경과를 알렸다. “곧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시죠. 짧게 시간 드리겠습니다.” 의사가 돌돌 말린 전화선을 길게 늘어뜨려 친구의 귓가에 댔다. 딸이 마지막 고해성사를 하듯 가슴속 언어를 실어 보냈다. “아빠 사랑해. 잊지 못할 거야.” “아빠랑 함께해서 행복했어.” “엄마가 기다리실 거야.” 잠시 후 의사가 수화기를 잡았다. “말씀 다 하셨지요? 지금 운명하셨습니다. 이제 시신을 정리하겠습니다.” 오열하던 딸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선생님. 하나만 답해 주세요. 아빠가 제 말을 분명히 다 들으셨을까요?” “네. 모두 들으시고 떠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딸의 신음 속에 커튼이 쳐졌다. 그래도 숨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 언어를 전하며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았다는 것으로 딸의 마음이 편해지길 바랐다. 한쪽에선 단장의 아픔을 삼키는 순간, 다른 한쪽에선 코에서 들숨이 멈추고…. 두 부녀 사이에 이승과 저승이 엇갈리는, 또 하나의 비포와 애프터의 금이 그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문득 생각이 스쳤다. 1950년대 명동의 댄디 보이,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 그는 꼭 럭키스트라이크 담배만 피우고, 도시풍의 시를 쓰고, 서구적 분위기를 풍기며 당시 어두운 삶의 현실을 노래하곤했다. 그가 고해성사를 하듯 낮게 읊조렸다. “인생은 통속적인 대중잡지의 표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인간의 생로병사가 그렇지 않은가. 목마름에 애태우고, 갈급함에 눈물짓던 날들. 그것이 세월로 흐르고 사람들 사이를 여울져 갈 때, 생로병사는 만경창파에 나뭇잎 하나로 떠내려가는 것이다. 박인환의 시에 곡을 붙여 박인희가 노래한 ‘세월이 가면’도 그랬다. 인간이란 슬픈 운명은 그렇게 통속적으로 이끌리는 것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남아있네/ ... /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이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남아 있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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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30
  • 일본은 아픈 나라이다
    아무리 슬퍼도 울지 않는 사람을 독하다고 말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눈가만 촉촉할 뿐 소리 내어 울지 않는 딸을 보고 ‘독한 년’이라고 숙덕이던 동네 어른들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인의 정서상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 하겠다. 우리는 영화보다 울고, 드라마 보다 울고, 심지어 남의 슬픈 사연을 듣다가도 화장지를 찾는다. 꼭 슬퍼서만 우는 것도 아닌 게 우리는 기뻐서도 울고 억울해서도 운다. 우리의 눈으로 일본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그런 것 아닐까? 그들은 우리와 달리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여름철마다 태풍이 왔다 하면 열의 일곱여덟은 일본 열도로 상륙하는 걸 보면서 땅도 잘 만나 태어나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의아한 것은 그 많은 재난을 겪으면서도 일본사람들은 비통해할 뿐 우리처럼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까. 5년 전, 홋카이도 지진에 오사카 태풍 등 연이은 재난으로 열도가 쑥대밭이 됐을 때, 뉴스를 보다가 문득 그런 의문을 떠올렸다. 산사태로 깔려 죽은 남동생의 시신을 찾은 누나가 보인 첫 반응이 너무나 의외여서 놀랐다. 통곡을 해도 모자랄 판에 한다는 말이 “동생의 마지막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어떻게 저리도 차분할 수가, 냉정할 수가 있지? 그 장면이 너무 인상 깊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 같으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할 텐데, 저렇게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하루는 한국 남자와 결혼해 서울에서 사는 일본 여성과 일 때문에 만나는 자리가 있어서 물어봤다. “가족이 죽었는데 왜 슬피 울지를 않는 건가요?” 돌아온 답은 “일본사람이라고 슬픔이 왜 없겠어요. 다만 남들 앞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슬프면 우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되묻자 “울음을 터트리면 감정을 드러내게 되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면 타인과 충돌할 수도 있잖아요.” 그날 만남에서 일본사람들 의식 속에 깊이 뿌린 내린 것이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슴에 슬픔이 가득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랜 역사 속에 굳어진 일본인의 습성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감정을 터뜨려 슬픔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는 우리의 정서와는 크게 다른 점이었다. 그녀도 느끼는 게 있는지 고베지진 때 ‘눈물을 흘리는 만큼 강해질 수 있어’라는 노래가 일본에서 유행했다고 전한다. 감정을 가슴속으로 삭이지 말고 드러내고 살자는 그런 노래였단다. 노래까지 만들어 부를 정도였다면, 그들 스스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삶의 행태를 자각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우리에겐 안 우는 일본인이 신기한데, 그녀의 눈엔 잘 우는 한국인이 기이했던 모양이다. 한국에 처음 와서 가장 낯설어한 것 중 하나가 한국인의 우는 문화였단다. 자식이 부모를 잃고 슬프게 우는 건 당연하다 해도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부둥켜 우는 모습은 한동안 이해불가였다며 웃어 보였다. 한국에는 일본에서 보기 힘든 눈물이 더 있다고 했다. 억울하고 분해서 흘리는 눈물 말이다. 분함은 똑같은 상정이지만, 일본인은 ‘분함’의 이유를 남이 아닌 내게서 찾으려고 한단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내가 후회되고 속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분함의 이유를 나보다 ‘너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자연재해를 당해도 운명으로 돌리고 곧 잘 체념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재난이 잦다 보니 자연에 순응함이 몸에 밴 탓일까. 그렇게 감정 표현을 아끼면서 연애는 어떻게 하느냐고 되묻자 까르르 웃고는 이렇게 대꾸했다. “서울에 와서 놀란 일이 있어요. 공원에 앉아 있는데 연인끼리 심하게 싸우면서 지나가는 거예요. 이제 파탄이다 했는데, 좀 있으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 손잡고 웃고 나오는 거예요.” 다시 웃음 꽃이 폈다. 이번에는 그녀가 내게 질문을 했다. “일본서 한류 드라마의 주요 인기 요인이 뭔 줄 아세요?” 잠시 머뭇대다 꽃미남? 하자 고개를 흔들고는 “남자의 눈물이에요.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우는 장면을 보면 너무 신기한 거예요. 남자가 사랑 때문에 우는 그 자체가 감동인데, 게다가 꽃미남이 울고 있는 거잖아요.” 그제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꽃미남의 눈물이 일본 아줌마들의 영혼을 흔들어놓는다는 이유를.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은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고전이다. 국화의 상징이 다양하지만 대체로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한다면, 칼은 그 이면에 숨긴 잔인한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바쿠후(幕府)의 지배 때문이겠으나 사무라이 문화와 할복의 전통이 칼을 일본의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무거운 죽음의 이미지가 심미적 태도와 만나 기이하게 죽음의 미학으로 표현되고, 그래서인지 일본 문학에서의 죽음은 슬픔을 크게 내포하지 않고 있다. 그저 삶의 한 유형으로 담백하게 마주하고 때론 아름답게 보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일본의 국화로 잘못 알고 있을 만큼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사쿠라(벚꽃)’를 생활 문화 속에 자주 등장시키는 데서도 확인된다. 사쿠라는 우리 옛말 ‘사그라지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화사하게 피었다 어느 한순간 쏟듯이 져버리는 담백함에서 일본인의 기질을 보게 된다. 인양된 남동생의 시신 앞에서 차분하게 ‘동생의 마지막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한 누나의 말처럼 슬픔이 농익으면 저런 모습일까.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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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7
  • 존재의 가벼움
    20년 넘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 대부분 책을 쓰기 위한 만남이었다. 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고 한 가치는 무엇인가?”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인데도 한결같이 ‘시간’에다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시간의 쓴맛과 단맛을 경험하면서 각자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시간만큼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도 없지만 불평등한 것도 없다. 사람에 따라 같은 시간을 갖고도 일군 결과물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사람과의 경쟁인 것 같아도 실은 저마다 시간과의 경쟁이다. 잔잔한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정신 사나운 발짓 같은. 이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노력보다,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들이는 내공이 오르려는 결심보다 더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남 없이 다 그러한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시간과 밀당을 하다가 훌쩍 중장년이 되고, 어느새 정년퇴직이란 깃발 앞에 하차라는 낯선 길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 만남이 줄어들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20~30대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대책 없이 불거질 때도 있다. 나를 지탱해 주던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내일만 보이니 정처가 딱할 수밖에…. 평균 예닐곱의 단톡방을 갖고 있어도 나이가 들수록 호불호가 나뉘고 친구의 영역은 좁아진다. 진심으로 사귐을 갖는 친구 열 명을 세기가 간단하지 않다. 나이 들어도 자기 관리를 잘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고, 서로의 욕구를 풀어주고 위로하며 걸을 수 있는 친구란 극히 제한적이다. 벌써 삼십 년 전 일이다. 큰 수술을 마치고 요양 중인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린 적이 있다. 그때 구십 노인의 몸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 자락 바람에도 바스러질 것 같은 앙상한 팔다리와 계곡진 가슴과 드러난 등뼈를 보고 옥상에 올라가 눈물을 흘렸다. 그 기억이 이어령 선생의 부고를 접하면서 되살아났다. 선생의 마지막 증언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그때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도 아프시면서 매일같이 몸무게를 쟀다. 50kg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마음을 쓰셨다. 하루의 컨디션이 그날의 몸무게에 따라 출렁였다. 빠지는 몸무게가 그렇게 서운하신지 “평생소원이 100근(60kg) 되는 것이었는데.” 목표에 이르지 못한 운동선수처럼 애석해하셨다. “요즘엔 아프니까 밤낮 무게를 재거든. 시간에도 무게가 있는 것 같아. 매일 가벼워져. 옛날엔 몸이 무거워지는 걸 걱정했는데, 지금은 가벼워지는 게 걱정이야... 늙으면 눈물도 한 방울 이상을 흘릴 수 없다네. 가벼워져서 많은 걸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이어령 선생의 글은 늘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다. 흐느끼며 한참을 울 수 있는 것도 젊은 날의 축복이다. 그 옛날 옥상에 올라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 눈물같이. 그때는 사내가 웬 눈물이 많으냐고 할머니가 걱정을 다 하셨는데, 아버지가 어느 날 “눈물이 속절없이 말라버린 갈천이 되었다”라고 툭 던지신 말씀이 벌써 나의 말이 되는 것을 느낀다. 평생을 두 발로 혼자 걸을 줄 알았는데 지팡이를 짚으시면서는 “마른 수수깡처럼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한다”라는 그 말씀도 나름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가벼워진다’는 말에서 슬픔의 냄새가 났다. 늙은 몸은 하루에 얼마씩 가벼워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앞서 보내고 10년을 홀로 사시면서 “하루에 깃털 몇 개씩 빠지는 것 같다”라며 가벼워지는 육신을 아쉬워하셨다. 그러나 내겐 몸은 가벼워지되 존재의 무게는 반대로 버거워진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들렸다. 그것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친구에게서 느꼈다. 인생을 함께 나눈 친구는 지난해 아내를 유방암으로 작별했다. 48년을 함께 살은 생의 동반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온통 세상의 무게가 그의 어깨 위로 쏠리는 것 같았다. 같은 해 또 한 친구는 43년을 함께 살던 아내와 이혼했다. 각기 다른 아내의 부재를 겪는 친구들이지만 배회하는 쓸쓸한 눈빛은 비슷했다. 뜨거운 발열로 짝을 찾아 시작한 삶이 차가운 이별로 끝나는 건 결혼과 이혼뿐인가. 생과 사도 같은 과정이 아닌가. 사별로 인한 별리의 슬픔도 크지만, 살면서 갈라서는 이별은 또 다른 아픔이다. 1년 전 황혼 이혼한 친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이 무언가를 조금씩 쌓아 올리는 기쁨의 것이라면, 이혼은 적은 하나까지 몽땅 까놓고 나눠야 하는 가늠조차 어려운 그 기분”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은 이혼을 하고도 예사롭게 만나 식사도 한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그마저 예사롭지 않다. “공유했던 시간이나 추억까지 나눌 것과 폐기할 것을 가르는 허망한 인생 세계”가 그림자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내린 삶의 뿌리가 깊어서일 것이다. 오늘 아침, 조카가 결혼 8년 만에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는 반가운 출산 소식을 들었다. 만인의 축복을 받을 만한 집안의 경사다. 시험관 아이로 어렵게 탄생한 아기에게 엄마는 무슨 말로 기쁨의 첫 운을 뗐을까. 한쪽에서는 주먹을 꼭 쥔 생명이 태어나 그날부터 무게를 더하고, 다른 한쪽에선 서서히 주먹을 풀며 매일 가벼워짐을 느끼면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두 손에 시간을 꼭 쥔 존재와 시간을 놓는 존재가 상극으로 교차하는 세상 가운데 오늘도 우리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하루에 ‘몇 그램’씩….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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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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